바티칸에 갓 쓴 김대건 신부 조각상… 세계 聖人들과 나란히
한국인 최초 가톨릭 사제인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의 조각상이 5일(현지 시각) 세계 가톨릭의 수도인 로마 바티칸 중심부에 설치됐다. 8000여 명에 달하는 가톨릭 성인 중 한국인을 넘어서 동아시아 성인의 상(像)이 바티칸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불리는 바티칸 곳곳에는 성인들의 조각상 1000여 점이 세워져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주교회의)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의 성상(聖像)은 성 베드로 대성전 오른쪽 외벽에 있는 4.5m 높이의 아치형 벽감(壁龕·벽면을 안으로 파서 만든 공간)에 설치됐다. 이곳은 전임 교황 대다수가 묻힌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 바티칸 기념품 가게와 가까워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근처에는 가톨릭 성인 중에도 널리 알려진 프란치스코 성인과 도미니코 성인의 성상도 있다.
김대건 신부상은 높이 3.7m, 폭 1.8m로 멀리서도 쉽게 보인다. 특히 다른 서양 성인들의 조각상과 달리 갓과 도포 등 한국 전통 의상을 입고 두 팔을 벌린 모습이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성상은 설치 후 천으로 덮였으며 오는 16일 오전 봉헌 감사 미사와 축성식 이후 정식 공개된다. 감사 미사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축성식은 성 베드로 대성전의 수석 사제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이 각각 맡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염수정 추기경,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등이 축성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182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스물네 살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천주교 박해 속에서도 사목 활동을 하다 체포돼 1846년 순교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인 1984년 시성(諡聖·성인으로 선포함)됐다.
김대건 신부상은 중견 조각가 한진섭(67)의 작품이다.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석(石) 조각에 몰두해왔다. 서울 둔촌동에 그의 작품 50여 점이 전시된 ‘한진섭 조각 공원’도 있다. 한 작가는 “모형 제작에 1년, 대리석 찾는 데 5개월, 제작에 8개월 등 총 2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특히 “소재가 될 대리석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며 “균열과 무늬가 없는 높이 4.5m, 폭 2m 크기의 ‘통돌’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 이탈리아 유학 시절 지인들이 총출동, 대리석 산지 카라라를 샅샅이 뒤져준 덕분에 적합한 흰색 대리석(비앙코 카라라)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성상 제작비는 국내 16개 교구가 지원했다.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 설치는 유흥식 추기경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돌을 기념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을 건의해 이뤄졌다. 유 추기경은 대전교구장 재임 당시 김대건 신부 탄생지 ‘솔뫼’의 성지화 사업을 주도했다. 또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해외에 널리 알리는 데도 앞장서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석 당시 솔뫼 성지를 직접 방문했다. 교황은 또 지난해 11월 바티칸에서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탄생’을 시사하고 제작진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조선 후기 서학(西學)이라는 학문으로 전래돼 자생적으로 성장했다. 여러 차례의 박해로 초기 신자 대부분이 순교했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는 약 500만명의 신자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전 세계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 일반 알현 강론에서 “한국의 순교자들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갖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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