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순무’도 기부했어요” 반려동물과 나눔 실천

조건희 기자 2023. 9.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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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열매 ‘착한펫’ 기부 프로그램
고양이-햄스터 등 종에 상관없이
월 2만 원 기부 땐 ‘착한펫 회원증’
치유동물 훈련시켜 취약층 보듬고,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 취득 도와
6일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회관에서 ‘착한펫’ 기부에 참여한 기부자와 반려견들이 활짝 웃고 있다. ‘착한펫’은 반려동물 이름으로 월 2만 원 이상 정기 기부를 실천하면 반려동물 명의로 회원증을 발급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성금은 취약계층과 반려동물 지원에 쓰인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8년째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온 홍민지 씨(32)는 최근 매달 2만 원을 더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기부증에 적힌 이름이 ‘홍민지’가 아니었다. 그 대신 홍 씨의 ‘보물 1호’인 열 살짜리 반려견 ‘모찌’의 이름과 사진이 당당하게 실렸다. 홍 씨가 참여한 기부 프로그램은 반려동물이 기부의 주체가 되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김병준)의 ‘착한펫’이었기 때문이다.

● “반려동물 이름으로 사랑 나눠요”

6일 사랑의열매는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회관에서 ‘착한펫’ 1호 가입식을 열고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개시했다. ‘착한펫’은 반려동물 이름으로 월 2만 원 이상 정기기부를 실천하면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햄스터, 도마뱀 등 종에 상관없이 어떤 동물이든 그 명의로 ‘착한펫 회원증’을 발급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성금은 취약계층과 반려동물 지원에 사용된다. 반려인 1500만 명 시대를 맞아 성숙한 반려 문화 확산 추세에 맞춰 기획됐다. 프로그램을 개시하기 전부터 전국에서 문의가 몰렸고, 사랑의열매 17개 시도지회별로 ‘1호 기부자’가 탄생했다.

홍 씨와 그의 반려견 모찌는 부산 1호 ‘착한펫’ 기부자다. 홍 씨는 오랜 세월 기부 활동을 해온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기부 문화에 대해 알게 됐다. 모찌를 키운 뒤로는 반려동물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깊어졌다고 한다. 홍 씨가 2016년 11월 직접 나눔을 실천한 첫 대상도 유기동물 보호소였다. 최근엔 세계 고양이의 날(8월 8일)을 맞아 국내 한 고양이 보호소에도 소액을 후원했다. 홍 씨는 “아프고 상처 입은 사람과 반려동물이 모두 소외되지 않고 긍정적인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랑의열매 중앙회 1호 ‘착한펫’ 기부자는 개그맨 심진화, 김원효 씨 부부와 반려견 ‘태풍이’다. 심 씨 부부는 2020년 태풍이 불던 날 구조된 유기견을 입양해 태풍처럼 강하고 튼튼하게 살라며 ‘태풍이’라 이름 짓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심 씨는 “태풍이를 키운 후로 마음 한구석에 (동물권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는데, 한 발짝 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블로거 이유미 씨와 반려견 ‘순무’, 최원섭 대한무용협회 충북지부 사무차장과 반려견 ‘초코’ 등도 각각 인천·충북 1호로 각각 이름을 올렸다.

행사에선 ‘반려동물 매개 취약계층 지원 사업’ 양해각서(MOU) 체결식도 함께 진행됐다. 사랑의열매는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애견연맹, 동물권행동 카라와 함께 ‘착한펫’ 프로그램 정착 홍보와 반려동물 및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사업을 수행할 계획이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착한펫’을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과 기부 문화가 점차 확대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성금은 유기견 훈련, 취약계층 취업 등에 활용

‘착한펫’ 성금은 취약계층과 반려동물을 위한 지원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유기동물 발생 예방과 치유동물 훈련을 위한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버려지는 반려동물은 하루 약 250마리로 추산되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 입양된다.

유기동물이 전문 훈련 과정을 밟을 경우 우울증 등을 앓는 취약계층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치유동물로 활동할 수 있는 만큼, ‘착한펫’ 성금도 여기에 집중할 방침이다. 치유동물 활동을 마친 뒤에는 새로운 보호자에게 입양될 수 있도록 돕는다.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반려동물과 함께 찾아가 말벗이 돼주는 봉사활동도 지원한다.

사랑의열매는 2021년 부산 서구 부민노인복지관을 통해 실시했던 ‘생스(Thanks)! 투.개(犬).더’ 사업을 모범 사례로 고려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홀몸노인들이 반려동물을 매개로 만나 정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혹시 모를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배변봉투 사용법 등 펫티켓(펫+에티켓·반려동물을 기를 때 지켜야 할 공공예절)을 안내하고, 반려동물 건강 관리법도 알려줬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홀몸노인 10명에게 나타난 변화는 놀라웠다. 한 70대 여성 노인은 남편과 사별한 후 집에 도둑이 들까 봐 대형견 한 마리를 입양한 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른 홀몸노인과 자주 만나 대화하며 바깥 활동이 대폭 늘어났다. 다른 참가 노인은 프로그램 참여 이후 복지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우울증 위험 점수가 절반으로 낮아졌다. 송지은 사회복지사는 “홀몸노인이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집 밖으로 나서서 소외감을 극복할 계기가 필요한데, 반려동물이 그 역할에 제격이었다”고 말했다.

‘착한펫’ 성금은 취약계층이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관련 산업에 취업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에도 쓰인다. 반려동물을 사랑하지만 경제 형편상 양육비나 치료비를 대기 어려운 경우에도 성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황인식 사랑의열매 사무총장은 “‘착한펫’은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사랑과 행복을 이웃과 나눌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사랑의열매는 도움이 필요한 반려동물과 취약계층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착한펫 참여 문의는 사랑의열매 홈페이지나 나눔콜센터에서 가능하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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