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태양광처럼 망가질 수도… 배터리 업계, 위험에 빠진 까닭

이정구 기자 2023. 9.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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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과잉생산, 철강·태양광처럼 헐값 수출로 시장 장악
그래픽=양인성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이젠 창고에 재고가 쌓이는 공급 과잉 국면에 접어들었다. 올해 배터리 생산량이 수요의 2배에 달할 정도다. 과거 중국 기업들이 내수시장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을 저가에 밀어내기식으로 수출해 글로벌 산업 생태계를 교란시키며 해외 경쟁사는 물론 자국 업체까지 함께 망가졌던 철강·태양광 사례가 배터리 업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 ‘K배터리’ 업계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그래픽=양인성

◇중국 올해 생산량, 수요의 2배 넘어

6일 시장조사업체 CRU그룹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1500기가와트시(Gwh)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2200만대에 공급 가능한 규모로, 올해 중국산 배터리 수요(636GWh)의 2배를 넘는다. 올해 5월 기준으로 전기차용 배터리의 누적 재고는 253GWh로 사상 최고다. 2027년에는 배터리 생산량이 수요의 4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급 과잉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중국 5대 자동차 기업 중 하나인 창안자동차 주화룽 회장은 지난 6월 중국 자동차 포럼에서 “2025년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수요량은 1000~1200GWh이지만 업계의 생산능력 확대 계획은 4800GWh에 달해, 공급 과잉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배터리 공급 과잉은 전기차 판매량 증가 속도의 둔화, 정부 보조금을 노린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생산능력 확대,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제외하려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규제가 맞물린 영향으로 분석한다.

중국 정부는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자국 기업을 키웠는데, 올해 보조금 폐지를 앞두고 지난해 생산 투자가 급증했다. 중국 현지에선 현재 배터리 산업에 8만9000여 기업이 영업 중인데 절반 이상인 5만8000여 기업이 최근 1년 반 새 신규 진입한 업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픽=양인성

◇철강, 태양광 덤핑 공세 전철 밟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은 국내 수요를 훨씬 뛰어넘는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했다”며 “철강과 알루미늄, 태양광 등 다른 산업에서 나타났던 공급 과잉 사태가 배터리에서 재현될 것이라는 업계 전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배터리에 앞서 신흥 산업에서 거대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자국 기업을 키운 뒤, 자국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 재고를 헐값에 수출해 글로벌 시장 장악에 나섰고 이 과정에 무역분쟁을 불러왔다. 2007~2011년 중국산 태양광 셀·모듈의 저가 수출이 급증해 미국 시장 점유율 과반을 차지하자, 당시 오바마 미 정부는 중국산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2015년에는 저가 중국산 철강이 대거 글로벌 시장에 쏟아지며 사상 최초로 철강 수출 1억t을 돌파하자, 이듬해 미국이 중국산 냉연강판에 522% 반덤핑 관세를 물려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시키려는 규제가 잇따랐다.

배터리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올해 7월까지 시장 점유율은 23.5%로 전년 동기 대비 1.7%포인트 하락했다. 3사의 배터리 사용량은 16~53% 늘며 성장했지만, 중국 기업의 비(非)중국 시장 침투가 늘면서 점유율에선 손해를 봤다. 반면, 중국 CATL의 배터리 사용량은 같은 기간 54.3% 증가해, 유일하게 30% 넘는 점유율(36.6%)을 기록했다.

◇내부 투자 줄이고, 미국 외 시장 개척하는 중국

중국 기업들도 이미 공급 과잉을 전제로 앞으로 대응 방안 모색에 나섰다. 미국의 IRA 규제로 북미 시장 진출이 어렵게 되자 멕시코, 헝가리, 태국 등 해외 생산라인 구축을 확대하고 있다. 포화에 이른 내수 시장과 규제로 막힌 북미 시장 외 신규 시장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내부적으로는 가격 인하, 감산도 이어지고 있다. CATL은 올해 3분기부터 일부 기업에 배터리 가격을 약 15% 싸게 공급하기로 했다. 향후 3년간 이들 기업의 배터리 구매량의 80%를 CATL로 채운다는 조건을 달았다. 투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대규모 감원 등 구조조정을 한 기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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