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피프티피프티’ 사태의 함의와 표준전속계약서
언제부턴가 케이팝은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분류되는 흐름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대중음악 시장인 미국에서도 케이팝은 변방의 음악이 아니다. 미국 내 음반·음원 판매량, 라디오방송 횟수 등을 기준으로 팝의 인기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빌보드 핫 100’에 가장 많은 1위 곡을 올린 아티스트가 놀랍게도 BTS(방탄소년단)였다.
케이팝이 팝의 본고장에서 통할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요인이 자리하지만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로 파악하는 게 옳을 것이다. 대형 연예기획사는 미래의 절대적 수익원이 될 연습생에게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들은 혹독한 교육을 견뎌낸다. 그 기간은 평균 3년3개월 정도 될 만큼 긴 편이다.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며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케이팝 아이돌 대부분이 이러한 통과의례를 거쳤다. ‘대형 연예기획사 연습생 입문→앨범 출시 및 대중음악 시장 데뷔→기획사와의 정식 계약 체결 및 활동 본격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성공한 케이팝 아이돌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 화제가 되는 4인조 걸그룹 피프티피프티는 이런 공식에서 살짝 비켜 나 있다. 그것은 중소기획사 소속 신인으로 데뷔 4개월 만에 첫 싱글 앨범 타이틀 곡 ‘큐피드’가 ‘빌보드 핫 100’에 진입했고 이후 23주 연속(8월 말 현재) 차트 상위권에 올라 있는 전례 없는 기록 때문이다. 이 같은 ‘중소돌의 기적’은 여세를 몰아 폭발적인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빌보드 진입 석 달 만인 지난 6월 소속사를 상대로 돌연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활동을 중단했다. 소속사가 정산자료 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멤버들에 대한 건강 관리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으나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피프티피프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법원의 결정으로 전속계약 해지가 불발된 피프티피프티는 항고와 본안 소송을 진행한다는 입장이어서 법적 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피프티피프티 사태는 케이팝 아이돌과 소속사 간의 법적 분쟁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그것의 핵심은 14년 전에 만들어진 표준전속계약서의 손질이다. 가수와 연기자 등 대중예술인들이 연예활동을 할 때 기획사와 체결하는 표준전속계약서는 대중예술 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대중예술인과 기획사 간 관계를 반영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최장 7년의 계약 기간을 비롯해 연예 활동 범위, 수익 분배, 매니지먼트 권한 등의 항목을 담고 있는 표준전속계약서는 과거 연예인이 회사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게 보호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져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환경과는 맞지 않는다. 대중예술인과 소속사 모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피프티피프티 사태의 이면에 표준전속계약서의 허술한 내용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 해결은 과감해야 하고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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