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여론 재판을 경계한다
현직 판사로부터 자신은 절대 화제가 되는 사건의 재판장이 되기 싫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재판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후 그 판결 결과에 대한 대중의 의견이 부담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가 한창 진행되면서 서초동과 광화문에 인파가 몰리던 즈음에 나눈 대화다.
물론 법원 역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하며 모든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가 원칙이다(헌법 제109조). 그러나 판결에 대한 호불호와 함께 법관 개인의 사생활이 여론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얼마 전 여당 유력인사에 대한 1심 명예훼손죄 판결을 두고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이 재판장의 과거 SNS 발언을 문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떤 '여론'들이 재판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사회 대중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의견이라는 여론이 어떻게 재판에 개입할 수 있을까. 법률적 추론을 단순화하면 사실인정, 법리적용, 판결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여론이 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인정 영역이다. 대부분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가령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인했다'는 사실인정이 되지 않으면 그 후의 결론은 무죄판결로 단순해진다. 이와 달리 공소장에 기재된 살인이 인정된 다음에는 그것이 정당방위였다는 변호인의 변론도 가능하고 이후 양형과 같은 판사의 재량적 판단도 가능해진다.
문제는 바로 그 사실인정에 관한 법원의 심리에 여론이 개입하는 경우 발생한다. 좋은 참고사례가 최근 미국에서 발생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뎁 vs 허드'는 2022년 세계적 화제가 된 할리우드 배우 앰버 허드와 조니 뎁 사이의 명예훼손 소송을 직접 다룬다. 미국 버지니아주 지방법원에서 열린 이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심리과정이 공중파 방송으로 중계됐다. 전통 미디어뿐만 아니라 온갖 유튜버가 이 소송을 직접 중계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더욱 상승했는데 한때 부부였던 두 스타의 사생활이 폭로되면서 집단관음증이 발생한 것이다.
소송의 쟁점은 '과연 조니 뎁이 앰버 허드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했는가'였다. 가정사건은 CCTV나 증인이 없으면 당사자들의 진술만 남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의 직접증거는 없었다. 결국 간접증거에 의해 폭력이 있었는지 판단해야 했는데 조니 뎁이 술에 취해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동영상과 평소 부부의 언행에 대한 주변인들의 증언 같은 간접증거들이 법원에 제출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간접증거들을 합리적으로 분석해 사실인정을 해야만 하는데 여기서 합리적인 분석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이것이야말로 소송 실무에서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한편 간접증거들로 사실인정을 하는 배심원들(한국에서는 법관들)이 법원에 현출된 증거보다 일상에서 접하는 언론기사나 이제는 더 큰 힘을 발휘하는 SNS에 광범위하게 퍼진 왜곡된 사실과 의견에 휘둘리는 경우 배심원들의 판단 역시 오염되기 쉽다.
특히 이 떠들썩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SNS에서 대중의 판단은 '허드=악녀, 뎁=선량한 피해자'라는 구도가 확고히 자리잡게 됐다. 다큐멘터리에서 재판이 끝난 후 뎁과 허드 측 변호사의 인터뷰에서 이것이 극명히 드러난다. 사실상 승소한 뎁의 변호사는 법원이 배심원들에게 예정한 SNS나 뉴스에 접근하지 않도록 한 규칙이 충실히 지켜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허드 측 변호사는 규칙의 준수는 가능하지도 않았고 배심원들이 결국 거대한 대중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논평한다.
이렇듯 법원의 판결조차 부분적이거나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파편화한 여론에 영향을 받으며 논란이 된다면 갈등을 조정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역할은 누가 할 수 있을까.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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