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시민 안전이 비용 부담보다 우선이다

박희준 2023. 9. 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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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허 사고, 무지와 안일로 발생
지하철 미세먼지 저감 신기술에도
저성능 부직포 청정기 위주로 설치
코레일, 저렴한 중국산 貨車 도입

사고는 예측불허다. 고속도로 방화벽에 불이 붙어 운전자 생명을 앗아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600m 떨어진 강둑의 물이 넘쳐 지하차도를 순식간에 덮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이태원 길거리에서 인파에 깔려 160명 가까운 시민이 희생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뒷짐 진 채 걸어간 경찰서장을 비난하지만 그 현장 속에 놓였더라면 전지적 능력으로 대응했을까.

사고는 무지에서 일어난다. 쉽게 불이 붙고 엄청난 연기를 내뿜는 거라 생각한다면 방음벽에 플라스틱 재질을 쓰지 않을 것이다. 강둑이 넘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면 둑을 헐지도 않고 허문 둑은 서둘러 보강할 게 분명하다. 발 디딜 틈 없이 몰린 인파가 도미노처럼 넘어져 압사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긴 경찰관이라면 누구라도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사고라서 제대로 예방하지 못하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박희준 논설위원
사고는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는 만큼 그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뾰족하거나 넘어질 수 있는 가구를 놓아선 안 된다. 아이 머리카락이나 손발이 끼일 만한 물건도 조심해야 한다. 시내버스 손잡이를 잡지 못하는 결벽증과는 다르다. 사고를 아예 막을 순 없겠지만 확률을 줄이는 건 가능하다.

하루 700만명 가까운 서울지하철 이용객에게 위험 요소는 무엇일까. 전력공급 차단이나 사고로 인한 운행 차질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지하 공간이라는 특성상 미세먼지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에 대한 강박관념이라고 치부할지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물질이었음이 드러난 건 20년가량 지나서였다.

요즘 서울 지하철역사에 공기청정기 설치가 점점 늘고 있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아쉬운 건 부직포 필터를 쓰는 공기청정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비용 문제로 부직포 필터의 공기청정기가 매력적일 수 있다. 부직포 필터는 3∼4개월마다 갈아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기질을 개선하기는커녕 되레 나쁘게 만들 수 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서울시가 2020년부터 약 196억원을 들여 지하철 1~8호선 역사에 공기청정기 4000여대를 설치했지만 공기질은 더 나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공기청정기 설치사업은 문재인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대책 차원에서 본격화한 사업이다.

전시성 사업이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지하철역 공기질 개선책이 필요하다. 환기구를 통해 깨끗한 공기를 순환시키는 등의 새로운 기술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데도 부직포 필터를 고집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공기질 개선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이 아닌가.

시민 건강과 안전은 비용 문제로만 따질 건 아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코레일은 2021년 2월 황산을 실어나르는 중국산 화물열차 20량을 차적 편입해 운행하고 있다. 앞으로 30량을 더 들여온다고 한다. 중국산 화물열차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국산 열차의 주행·제동·연결장치 사양과 맞지 않아 사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코레일 측은 2년간 중국산과 국산을 혼합·조성해 운행 중이지만 장애나 고장 등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아예 엉터리 열차가 아닌 이상 2년 만에 눈으로 확인할 만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새 열차 도입 시 10년에 걸쳐 100만㎞가량 시험 운행한 뒤 기존 차량과 혼합 편성하고 있다.

중국산 화물열차 가격은 국산보다 10%가량 저렴한 편이다. 10년 정도의 유지보수비까지 생각하면 가격 메리트도 별로 없고 중국 의존성만 키울 뿐이다.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생각할 수 없는 것까지 생각하고(Think the unthinkable), 점검하지 못한 것까지 점검해야 한다(Check the unchecked)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고가 나고서야 후회하고 수습하느라 천문학적 비용을 들인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안전을 위해 투입하는 비용은 소모가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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