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12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폐암 유발’ 이제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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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의 피해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급성 독성물질과 달리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돼야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낸 1심 소송에서 패소한 원인도 흡연과 암 발병 간 인과성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폐암 유발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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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5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를 열어 가습기 살균제 성분 물질 중 하나인 PHMG에 노출된 후 폐암으로 숨진 1명의 피해를 인정하기로 의결했다. 피해자는 30대 남성으로 비흡연자였다. 이번 결정은 고려대 안산병원 가습기 살균제 보건센터의 독성실험 결과를 근거로 내려졌는데, PHMG에 쥐의 기도를 노출시켰더니 40주 지나자 폐에 악성 종양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피해자 유족은 약 1억1700만 원의 특별유족조위금과 장의비를 받는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암 진단자는 206명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인정받는 질환은 몇 가지 안 된다. 처음엔 폐섬유증만 인정받았고, 천식과 태아 피해는 참사 발생 6년 후인 2017년에야 피해 질환에 포함됐다. 정부는 2020년 피해 질환을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인과성 입증의 장벽이 높다. 독성물질의 인체 시험은 금지돼 있어 동물 실험으로 인과성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은 생리 구조가 달라 동물에게 나타나지 않는 증상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이번 결정으로 폐암 진단자 전원이 구제받는 것은 아니다. 다른 요인으로 발병했을 수도 있으니 개별적으로 구제 여부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고령자와 흡연자의 경우 구제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개개인의 인과성을 따지기보다 피해자 전체를 정밀 진단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보상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한다. 중증 피해자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다. 신고된 사망자만 1700명이 넘는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신고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95만 명, 사망자는 2만 명이 넘는다. 업체는 치명적인 제품을 인체 무해성을 강조하며 내놓았고, 정부는 ‘세계 최초의 창의적 제품’이라며 KC마크까지 달아줬다.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환경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가해 기업들에서 거둬들여 조성한 피해구제기금을 나눠주는 일에도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참사 12년이 지났지만 피해 구제 신청자는 7862명, 이 중 2686명이 아직 구제를 받지 못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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