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오펜하이머와 원폭, 그리고 과학기술 R&D
원폭으로 美日은 과학기술 R&D 중요성 절감
韓 내년 R&D 예산 삭감, 미래 위한 정책인가
이로써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으며, 한반도에서는 우리 민족 모두가 고대하던 광복을 맞았다. 그런 측면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원폭을 개발한 오펜하이머는 어쩌면 우리나라 독립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물론 당시의 일본은 이미 패퇴의 기미가 짙었지만 그래도 본토 결사항쟁을 외치고 있었다. 원폭이 아니었다면 심훈 선생께서 생전에 그토록 갈구했던 그날은 상당히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런 날이다.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라며 절절하게 기다리던 날이다.
오펜하이머는 광범위한 자연현상을 수학적 모델 등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이론물리학의 천재로 이미 20대에 능력을 널리 인정받았다. 아인슈타인 등에 의해 20세기 초반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양자역학, 입자물리학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만약 인류가 모든 지식이 없어지는 순간을 맞는다면 후세를 위해 꼭 남겨야 할 단 한 구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학원생으로 참여했고 훗날 노벨상을 수상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세상의 모든 물질은 아주 작은 원자의 집합체라는 사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라늄 같은 무거운 원자는 핵분열 과정에서 큰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도 당시 이 분야 학자들의 두뇌 속에서 치밀하게 정리된 이론이었다.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황무지에서 시작해 3년여의 짧은 기간에 원폭이라는 대단한 실물(實物)을 구현한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이론을 다루는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장치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엔지니어까지 모든 인력이 서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소통해야만 이룰 수 있는 성과이기에, 이를 총괄 지휘한 오펜하이머는 대단한 경영 능력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당시 재정으로 약 20억 달러가 소요됐는데, 이를 지금의 가치로 바꾸면 약 280억 달러(약 34조 원)에 해당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금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은 31조8000억 원이었다. 그런데 6월 말 대통령의 ‘R&D 카르텔’ 지적 후, 정부는 황급한 재편 작업으로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무려 16.6%나 줄어든 25조9000억 원을 책정했다. 이런 대규모 R&D 예산 삭감이 과연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일까?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 중에도 증가했던 것이 R&D 예산이다. 원폭으로 인해 미국이나 일본은 과학기술의 힘과 R&D의 중요성을 그야말로 절감했다. 이에 비해 우리 정책 담당자들은 R&D를 국가 예산표의 장식 정도로 여기는 듯싶다. 과학과 기술은 국력의 근본이다.
다시 오펜하이머로 돌아가면, 그는 박사학위를 받는 것과 더불어 1928년 모두 12곳에서 일자리 제의를 받았다. 여기에서 특별히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은 그가 최종적으로 택한 직장은 두 곳이었다는 점이다. 즉, 당시 이론물리학 분야를 선도하던 칼텍, 그리고 실험물리학이 강했던 버클리대에서 6개월씩 번갈아 일하는 조건으로 취업을 했고, 그렇게 14년을 두 대학의 교수로 교육과 연구에 임했다. 빼어난 학자를 대하는 미국의 개방적 대학 시스템이 부럽다. 이미 100여 년 전 일인데 우리에게 이런 겸직은 현재도 불가능이다.
오펜하이머의 위대한 발명이 폭탄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치열한 전쟁이 계기가 돼 뛰어난 발명이 이루어진 예는 너무 많으며, 실제로 청동기 인류문명을 철기로 한 단계 끌어올린 것도 전쟁이었다. 그리고 쇠붙이로 제일 먼저 만든 것이 창과 방패라고 이를 멀리하는 것은 우둔한 일이다. 쇠붙이로는 호미도 만들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나자 원자력은 곧 전기 생산으로 이어졌고, 오늘 대한민국이 쓰고 있는 전기는 4분의 1 이상이 원자력 덕분이다. 오펜하이머는 결국 우리들의 편리하고 윤택한 삶에도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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