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들도 아는 강자의 조건[서광원의 자연과 삶]〈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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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기'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1823∼1915)가 어느 날 '이종 격투기 대회'를 개최했다.
곤충계에도 탁월한 사냥꾼이 많은데, 이들의 특기는 일격 필살.
호적수를 알아본 듯 두 녀석이 탐색전으로 일관하자 답답한 파브르가 뒤영벌을 거미 구멍으로 슬쩍 밀어넣었을 때 기다리던 장면이 벌어졌다.
아쉬웠지만 흥미를 느낀 파브르는 다른 선수로 경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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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예선전을 치른 끝에 본선 1차전에 진출한 ‘선수’는 뒤영벌과 거미. 뒤영벌은 무서운 침을 갖고 있고, 거미는 치명적인 독을 갖고 있다. 호적수를 알아본 듯 두 녀석이 탐색전으로 일관하자 답답한 파브르가 뒤영벌을 거미 구멍으로 슬쩍 밀어넣었을 때 기다리던 장면이 벌어졌다. 맹렬한 싸움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승부가 났다. 거미의 KO승이었다. 다른 뒤영벌도 마찬가지였는데 독보다 급소를 물린 게 결정타였다.
그 덕분에 2차전에 진출한 거미의 다음 상대는 덩치가 더 큰 어리호박벌. 거미는 이 상대 역시 신경마디가 있는 곳을 일격해 한 방에 쓰러뜨렸다. 하지만 승리의 대가도 컸다. 공격 과정에서 침에 찔려 24시간 후 운명을 달리했다.
아쉬웠지만 흥미를 느낀 파브르는 다른 선수로 경기를 이어갔다. 3차전 출전자는 왕거미와 벌들 중 가장 싸움에 능한 대모벌. 두 선수는 야생의 강자답게 신중한 탐색과 맹렬한 공격을 주고받은 끝에 승부를 결정지었는데, 이번 승자는 대모벌이었다. 단독 생활을 하는 이 벌은 평소에도 뛰어난 승률을 자랑하는데, 그래서인지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공격보다 먼저 거미를 구멍에서 나오게끔 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거미의 영역에서는 거미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상대가 나왔다 싶으면 번개처럼 달려들어 상황을 끝내 버렸다. 이들의 비결 역시 급소 일격. 가슴팍 정중앙을 지나는 신경조직을 눈 깜짝할 사이에 끊어버렸다.
놀라운 건, 이들이 사냥감을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 알을 낳은 곳에 넣어두면 알에서 나온 새끼들이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일용할 양식’이 되는 까닭이다. 이러려면 급소를 너무 깊거나 얕지 않게 톡 찔러야 하는데 이걸 귀신같이 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한 번에! 수많은 곤충을 본 파브르조차 감탄할 만큼 말이다.
다양한 생명체들의 생존 전략을 오랜 시간 탐구하다 보니, 강자의 필수 조건인 듯한 것들을 만나곤 한다. 급소 공략도 그중 하나인데 이유가 있다. 힘만으로는 진짜 강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들여야 하는 비용이 너무 높다. 이에 비해 급소 공략은 경제적이다. 완전히 다른 종이나 생태계인데도 대부분의 강자들이 이 능력을 기본기처럼 갖추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나도 무언가를 할 때, 항상 생각하려고 한다. 어디가 급소인가? 여기인가? 급소를 아는 게 무조건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아서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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