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의 ‘경찰 살인예고 글’…5만원에 산 ‘가짜 계정’이었다

이유진 기자 2023. 9. 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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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정부…허위 계정 만들어 판 30대 남성 ‘덜미’
IT 전문가 A씨, 보조 인증 허점 이용…100개 ‘맞춤 제작’
사칭글 올려 구속된 B씨 “이성과 원활한 만남 위해 구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허위 e메일로 인증받은 계정을 만들어 판매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에게 허위 경찰 직원 계정을 구입한 이용자가 지난달 블라인드에 살인예고 글을 올리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성한 블라인드 계정 100개를 판매해 약 500만원의 이득을 취한 A씨(35)를 정보통신망침입죄,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사전자기록위작 혐의로 지난 1일 검거했다고 6일 밝혔다. 블라인드는 e메일 등으로 직장을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고, 게시글에는 인증받은 직장이 표시된다.

경찰에 따르면 정보기술(IT) 전문가인 A씨는 올해 초 이직하려는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블라인드 계정을 구하던 중 실제 존재하지 않는 e메일 주소로 블라인드 계정을 생성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블라인드가 가입 희망자의 소속을 확인하는 e메일 인증 방법은 ‘정상 인증’과 ‘보조 인증’ 두 가지로 나뉘는데, A씨는 이 중 보조 인증 절차의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정상 인증의 경우 블라인드 측이 ‘인증코드’를 가입 희망자의 소속 회사 e메일 계정으로 보낸 뒤 인증코드를 다시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앱)에 입력하도록 한다. 반면 정상 인증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가입 희망자가 자신의 회사 계정 e메일 시스템을 활용해 블라인드 앱에 표시된 인증코드를 그 내용에 입력, 블라인드 측으로 발송만 하면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경찰은 A씨가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e메일 발신자 주소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포털사이트 등을 비롯해 다수의 사이트가 이 같은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차단 조치를 하고 있지만, A씨는 이런 차단 조치가 적용되지 않은 사이트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A씨가 활용한 수법을 통한 블라인드 가입은 불가능하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A씨가 지난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생성한 허위 블라인드 계정은 100개로 파악됐다. 구매 희망자가 원하는 회사·기관명을 제시하면 허위 e메일 계정을 ‘맞춤 제작’하는 식으로, 삼성·SK·LG 등 대기업 계열사를 희망하는 경우가 다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교육부 소속을 사칭한 허위 계정도 일부 판매됐으며, 대부분 4만~5만원 선에서 거래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지난달 21일 살인예고 글을 올려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진 30대 남성 B씨는 “블라인드 내에서 이성과의 만남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직업으로 경찰을 선택했고, A씨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나 계정을 구매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B씨는 지난 7월 A씨에게 5만원을 주고 경찰 직원으로 허위 인증한 블라인드 계정을 구입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판매한 허위 계정이) 범죄에 사용될 줄은 몰랐고, 이런 부분들이 기사화되면서 내가 판매한 것이 이용된 것은 아닌지 걱정돼 사용하던 블라인드 계정은 탈퇴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사용한 방법으로 생성된 계정이 추가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블라인드 측에 정보 제공을 요청했으나, 블라인드 측으로부터 정보가 담긴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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