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힘입기, 마음먹기, 되살기
얼마 전에 이사했다. 이사는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것이 아니다. 버스 노선, 장보기, 산책로, 인근 편의 시설, 분리배출 방식, 조망 등 생활의 많은 부분이 변화한다. 오래전에 살았던 동네로 다시 왔더니,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낯섦 속에서 찾아오는 익숙함은 안온함을 가져다준다.
익숙함 속에서 찾아오는 낯섦은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낯섦과 익숙함이 둘 다 있어서 적이 설레고 적잖이 안심되었다. 상가의 간판들이 변했지만, 거리를 거닐 때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는 듯해 기분 좋았다. 여전한 것들과 달라진 것들 사이를 누비다 잠깐 멈춰 서서 관성의 반대말이 뭘까 골몰하기도 했다.
관성의 반대말은 자유일까. 본인 의지가 아니라 제도나 조직에 의해 만들어진 관성은 때때로 그를 옭아맨다. 이때 자유는 관성을 거스르려는 마음을 반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관성의 반대말을 역행(逆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 앞으로 가는데 혼자 뒤로 가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반대 방향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지만, 일정한 방향이나 체계를 바꾸는 일은 변화를 꿈꾸는 일이다. 내친김에 관성의 반대말을 꿈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다.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을 거부하고 새로운 일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에 다가가는 마음을 떠올려보자. 관성에 젖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으로부터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당도한 곳에는 의식주가 있었다. 관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말이다. 입다, 먹다, 살다…. 삶의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일들이다. 흔히 의식주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등잔 밑이 어둡듯 나도 모르게 소홀해지게 된다. 시간에 쫓겨 살다 보면 빨랫감은 쌓이고 끼니는 때우는 게 되어 있다. 수면 부족으로 등받이를 발견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쪽잠을 잔다. 되는 대로 입고 쫓기듯 먹고 대충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관성에 휘둘리는 걸 신경 써야 한다. 어떤 옷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살지 늘 생각해야 한다.
‘힘입다’란 단어는 마법 같다. 도움이 절실할 때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힘입는 일은 난관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힘’이 마치 갑옷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옷 입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힘입는 일은 비일상에 가깝다. 나를 도울 사람이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잔인하리만큼 냉정하다. 이때 힘은 내가 입을 수 있는 최상의 옷이나 다름없다.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옷은 누군가에 의해 건네져 삶의 용기가 된다. 입히는 사람 또한 뿌듯할 것이다.
‘마음먹다’란 단어는 결심과 연결된다. 생각은 크게 ‘하겠다는 것’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나뉘는데, 마음을 먹을 땐 이상하게 하겠다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 역시 ‘하는’ 것이어서 그럴지 모른다. 마음먹고 떠나고 찾아가고 이야기하고 마침내 극복한다.
마음먹으면 어려운 일을 해낼 수도,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매일 먹지만 소화되는 양이 들쭉날쭉한 것도 마음이다. 그러나 먹은 마음이 행동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어제와는 자못 다른 사람이 된다.
‘되살다’란 단어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다시’의 느낌이다. 다시 살고 다시 찾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잃었던 무엇을 도로 찾아주는 것이 바로 되사는 일이다. 잃었던 것은 희망일 수도, 열정일 수도, 삶일 수도 있다. 되살기를 통해 이때껏 외면했던 것을 직면할 기회를 얻는다. 이때의 다시는 ‘제대로’의 의미다.
이사 후에도 입고 먹고 사는 일과는 멀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힘입기, 마음먹기, 되살기와 더불어 관성을 늘 경계해야겠다. 익숙해지되 낯섦을 잃지 말아야겠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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