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반쪽짜리’ 보고서와 ‘연금정치’ 실상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2023. 9. 6. 20: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위원회) 공청회 이후 ‘반쪽짜리’ 보고서가 몰매를 맞고 있다. 보고서에 국민연금의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위원회 일원인 나는 ‘반쪽짜리’ 보고서 논란에서 한국 ‘연금정치’의 실상을 본다. 입장 대립 수준을 넘어선 과도한 ‘연금정치’,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에 갇힌 협소한 ‘연금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우선 ‘반쪽짜리’ 보고서의 과정을 살펴보자. 소득대체율 인상이 빠진 경위와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두 위원이 사퇴한 이유가 평가 대목이다. 왜 보고서에 소득대체율 인상 내용이 없는가? 두 위원이 공청회를 앞두고 위원회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를 보고서에서 아예 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 결과이다. 다른 위원들은 입장을 떠나 보고서는 소득대체율 유지와 인상의 각 취지, 재정 영향 등의 정보를 시민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만약 인상론을 집필한 두 위원이 자신의 원고를 삭제하겠다면 대신 간사역을 맡은 국민연금 연구원이 초안을 작성해서라도 소득대체율 인상이 담겨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결국 소득대체율 항목 자체가 빠지게 됐다. 보고서가 다소 엉성해지더라도 위원 모두와 함께 위원회를 마무리하자는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공청회 전날 두 위원은 사퇴를 발표했고, 이번에는 공청회 보고서를 “소득대체율 인상안이 빠진 반쪽짜리 보고서”라고 비판했으며, 두 위원을 지지하는 노동·사회단체들도 규탄 목소리를 높였다. 결과적으로 위원회는 ‘반쪽짜리’ 보고서라는 수렁에 빠진 꼴이다. 격동의 한국 연금정치 무대에서 안이했다.

두 위원이 사퇴 이유로 삼는 ‘다수·소수’ 표기는 보고서 구성에 대한 상호 이해가 달라 발생했다. 소득대체율 유지론에서 보면, 인상론이 추가 재원방안 설명이 필요하다면서 많은 분량을 서술함으로써, 보고서가 소득대체율 인상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읽힐 수 있었다. 이에 위원들의 입장 분포를 있는 그대로 보고하자는 취지로 ‘다수 의견, 소수 의견’을 명시했고, 막후 조정에서 이 문구가 문제라면 위원 실명을 적자고 제안했으나 거부됐다. 이후에라도 위원회가 상세한 설명자료를 제시하기 바라며, 객관적인 평가가 이어졌으면 한다.

내용에 있어 반쪽짜리’ 보고서는 재정안정화만 담기고, 보장성이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말 그런가? ‘노후소득 보장 방안’ 제목의 4장 전체가 급여와 가입제도 개선 항목으로 모두 보장성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구체적으로, 유족연금과 장애연금을 개선하고, 출산·군 복무 연금크레딧을 강화하며, 특수고용 노동자 가입도 확대하고, 지금까지 본인이 전액 부담해온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지원하자고 제시한다. 의무가입 연령 조정도 현재 만 59세를 단계적으로 만 64세까지 높이면 명목 소득대체율 5% 인상 효과가 있다.

그런데도 일부 가입자 단체와 언론이 보고서에 ‘보장성 제외’ 딱지를 붙이는 건 보장성을 국민연금의 명목 소득대체율로만 재단하는 한국 연금정치의 오랜 관성이다. 국민연금의 급여는 명목 소득대체율에 가입 기간을 곱해 산정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금산식 기준에서 한국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낮게 산정(여기서는 명목 소득대체율, 의무 가입기간, 기초연금을 종합한 수치)된 것은, 국민연금에서 명목 소득대체율이 낮아서가 아니라 의무 가입기간이 짧아서이고 국민연금의 실질 연금액이 적은 원인 중 하나도 연금크레딧, 보험료 지원 등 불안정 취업자들을 위한 가입지원 제도가 빈약해서이다. 이에 추가 보험료율 인상을 수반하는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 대신 가입기간을 늘리는 실질 보장성 조치들이 중요하고, 국가재정도 이 가입기간 확대를 위해 사용되는 게 적절하다.

보장성의 시야도 국민연금을 넘어 기초연금·퇴직연금을 포함한 이른바 ‘연금 3총사’로 넓혀야 한다. 2022년 기초연금은 지출액이 20조원으로 국민연금(34조원)에 비해 그리 적지 않으며 퇴직연금은 보험료 수입이 57조원으로 국민연금(56조원)보다 많고 더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법정 제도로 연금 3총사가 있음에도 국민연금만으로 보장성을 논의하는 건, 퇴직연금을 시행하고 기초연금(당시 기초노령연금)도 도입한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에서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인하만을 기억하는 한국 연금정치의 편향이다.

이번 공청회는 위원회가 시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최종 보고서를 완성하는 자리가 있을 때는 소득대체율 인상 내용도 담아 연금개혁 논의 자료로 활용되도록 하고, 노후소득 보장 목표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연금 3총사의 역할도 강조되기 바란다. 아울러 한국 연금정치의 새 모습을 보고 싶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