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외유 의원 맞는 외교관들

이하원 논설위원 2023. 9. 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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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5공 시절 국회 운영위 의원들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프랑스 선진 의회 제도 시찰 명목이었다. 주프랑스 대사관의 참사관은 운영위 전문위원을 드골 공항에서 태워오는 임무를 맡았다. 전문위원이 차 안에서 프랑스 의회 제도를 “각색해야 한다”고 말하자 화가 났다. 전두환 정권이 프랑스 의회 제도를 왜곡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 그가 “공무원이 국민을 속이기 위해 파리까지 왔느냐”며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호텔도 싸구려 호텔로 잡아줬다.

▶알고 보니 전문위원은 당시 위세 높던 보안사 대령 출신. 현역 의원들이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운영위 의원들이 대사와의 점심을 거부하고 참사관 파면을 요구했다. 그와 동향(同鄕) 의원이 “국회의원쯤 되면 장관이나 공관장 문책을 논의해야지 실무진 파면을 논의하면 되겠느냐”고 해서 겨우 살아났다. 참사관은 회고록에서 이 사실을 밝혔다.

▶그 반대 케이스도 많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부가 의전비서관으로 추천한 외교관을 거부했다. 그 대신 아태평화재단 이사장 시절 중국 방문 시 브리핑과 의전으로 좋은 인상을 준 사람을 발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9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특사로 유럽을 방문했을 때 현지 공관장을 인상 깊게 보았다. 대통령 취임 후 그를 정무수석으로 기용했다. 희귀한 외교관 출신 정무수석이었다. 대통령 형을 외국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대사가 나중에 장관이 되기도 했다.

▶외교관들이 재외공관 근무 시 만난 정치인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다 보니, 의원 의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하루에 공항을 세 차례 왔다 갔다 한 외교관도 봤다. 능력은 부족한데 승진하고 싶은 일부 외교관은 대놓고 의원들에 대해 과잉 의전에 나선다. 골프장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를 개인 비서처럼 안내하며 점수를 딴다. 현지에 유학한 정치인의 자녀 관리를 해주는 외교관도 본 적이 있다.

▶해외여행 시 재외공관에 의전을 요구하는 정치인들도 급수가 있다. 공문을 통해 흔적을 남겨가며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이들은 하수다. ‘베테랑’들은 외교부 간부들을 통해 자신의 여행 계획을 넌지시 전해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한다. 주일 대사관이 조총련 행사에 참석한 윤미향 의원에게 차량 등 의전을 제공한 문제로 논란이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 돌연 귀족이 된 것으로 착각하는 정치인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잘못된 행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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