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대통령 "우리도 홀로코스트에 책임 있어"
2차대전 당시 독일 일부였던 오스트리아
과거사 반성·청산 미흡… "이제부터 시작"
“오늘날 오스트리아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존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헤르초그 대통령과 함께 빈 시내에 있는 홀로코스트 희생자 명비를 찾았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올해 이스라엘 건국 75주년을 맞아 판데어벨렌 대통령의 초청으로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했다.
두 대통령은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집단학살 피해자 약 6만5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비에 헌화하고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이 명비는 비교적 최근인 2021년 11월 9일 ‘크리스탈나흐트’ 83주년 기념일에 맞춰 제막했다. 우리말로 ‘수정(水晶)의 밤’을 뜻하는 크리스탈나흐트는 나치 치하 독일에서 1938년 11월 9일 밤에 일어난 유대인 박해 사건을 지칭한다. 나치 당원과 그 산하 기구 대원들이 도끼와 쇠망치로 무장한 채 유대인 소유 상점과 예배당 등을 공격해 유리창을 다 깨뜨렸다.
당시는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병합된 상태였던 만큼 오스트리아에서도 같은 테러가 벌어져 유대인들이 커다란 재산상 손실을 입었다. 일부는 나치 대원에 붙잡혀 그 자리에서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는 왜 홀로코스트 사안에 있어 이웃나라 독일보다 과거사 반성이 늦었을까. 앞서 밝혔듯이 2차대전 당시엔 오스트리아가 독립국이 아니고 독일의 일부였다는 점에 근본 원인이 있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에서 나치를 창당하고 독일 정계에서 활동했으나 정작 출생지는 오스트리아였다. 그는 언어와 문화가 같은 독일와 오스트리아가 왜 다른 나라로 갈라져 있는지 늘 의문을 품었다. 나치가 정권을 잡고 군비증강을 가속화하던 1938년 3월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전격 합병을 선언했다. 그때부터 1945년 5월 독일이 2차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일부였다.
전후 미국, 영국, 소련(현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까지 4대 연합국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도 분할 점령했다. 1955년에야 4대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점령통치에서 벗어난 오스트리아한테는 ‘독일과 절대 합병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조건이 부과됐다. 동시에 오스트리아는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이 될 것을 선언했다.
그때부터 많은 이들이 2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일부였다는 점은 잊은 채 ‘전쟁은 독일이 일으켰고 오스트리아는 무관하지 않는가’ 하고 여기게 됐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점을 들어 ‘오스트리아 역시 히틀러가 저지른 전쟁범죄의 피해자 아닌가’ 하는 인식까지 생겨났다. 오스트리아에서 나치 과거사 반성과 청산이 늦어진 이유다.
◆과거사 반성·청산 미흡… "이제부터 시작"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