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똑똑! 한국사회]
[똑똑! 한국사회] 조기현 | 작가
오랜 요양병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하던 날, 아버지는 차분했다. 병원을 나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도 아버지는 태연하기만 했다. 나는 이 상황이 영 어색했다. 치매가 있는 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갈 때도 늘 어디로 가냐는 질문을 수십번씩 던졌다. 아무런 질문이 없는 아버지가 어색해서 계속 눈치를 살폈다.
병원 밖 생활의 두려움도 설렘도 없이 그저 일상처럼 퇴원이 이뤄졌다. 어디로 가냐고 묻지도 않을 만큼 아버지에게 ‘다시’ 집으로 가는 날은 기다리면 오고야 마는, 그런 당연한 날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부조리극의 주인공은 아닌 셈이었다.
이 당연한 날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분주하게 준비했다. 우선 필요한 돌봄서비스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치매안심센터 등을 쏘다녔다. 아버지가 다치지 않도록 집 환경도 정비했다. 요양병원에 가기 전, 화상을 자주 입었기에 아예 가스레인지는 놓지 않았고,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패드를 여기저기 깔았고, 상시적인 안부 확인을 위해 홈캠을 달았다. 그 외에도 인지 능력이 저하돼 어떤 사고가 날 수 있을지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자잘한 요소 하나하나마다 대비책을 궁리했다.
나의 스케줄 관리도 중요했다. 프리랜서로 어느 정도 자리잡았기에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1박2일 일정은 소화하지 못하거나 국외 일정은 거절해야 할 때면 마음속에 아쉬움이 고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잘 돌보겠노라고 다짐했다. 내가 심적으로 무너지면 돌봄, 일, 일상 모든 게 꼬이고 어그러질 게 빤했다. 아버지의 퇴원 날짜를 정한 이후, 처음으로 심리상담도 받았다.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생각보다 연약한지, 어떤 부분이 튼튼한지를 알아두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나를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 특명 ‘아빠의 아빠’의 도전인데?”
분주한 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애인이 예전에 즐겨 보던 예능 ‘특명 아빠의 도전’을 패러디한 농담을 건넸다. 그런 농담을 들으면 묘하게 힘이 솟았다. 내 처지를 두고 누군가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작은 순간들이 작지 않은 위안이 됐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병든 아버지를 내가 직접 모시겠다’는 지극한 효심 따위는 나에게 없다. 다만 아버지가 병원 밖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어 했고, 나 또한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병원에만 갇혀 지내는 게 아쉬웠다. 사회적 지원이 조금만 더 있으면 분명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조금이 없어서 택한 게 요양병원이었다. 차악의 선택지였던 셈이다. 만약 더 힘들어지면 또다시 시설이나 병원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돌봄 부재로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사회적 입원’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됐다. 그럼에도 살던 곳에서 돌봄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기반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의 성인돌봄 예산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GDP 대비 1.5%)에 육박한다. 그런데 왜 돌봄 혜택을 체감하지 못할까. 커뮤니티 케어를 연구하는 김보영 영남대 교수는 재정 지원이 시설에 편중됐기 때문이라 고 말한다. 한국의 노인인구 대비 요양병원 병상 수가 오이시디 평균의 10배 수준으로 급증한 게 단적인 예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을 지역사회로 돌리면, 얼마든지 살던 곳에서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고립의 시대다. 누군가는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고, 누군가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 시설이나 병원으로 간다. 어떻게 하면 동네에서 돌보고 돌봄받는 관계망을 만들 수 있을까?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당장 당면한 현실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넘어, 동료 시민으로 그의 삶에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고립의 시대를 건널 수 있는, 연결의 가능성을 삶으로 증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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