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긋기와 ‘노키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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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에 200m가량 금이 간 적이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 노키즈존 운영에 긍정하는 응답이 71%나 됐다니, 노키즈존 확산에 사회의 암묵적 동의가 있는 셈이다.
사회의 주체인 성인은 그 어떤 무례에도 배제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타자인 어린이의 통제되지 않은 민폐는 봐줄 수 없다는, 약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태도를 노키즈존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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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에 200m가량 금이 간 적이 있다.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은 아찔하게 콘크리트 속을 보였다. 사고 아닌 사건으로, 콜롬비아 출신 도리스 살세도(1958~)의 작업이었다. 로비 전체에 길고 깊은 균열을 낸 작품 제목은 ‘십볼렛’(Shibboleth). 구약성서에 따르면 십볼렛은 동족 간 전쟁에서 피아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우리 사투리처럼 요단강 양쪽 지역의 ‘sh’ 발음이 달랐는데, 승기를 잡은 동쪽 부족이 십볼렛 발음으로 강 서쪽 사람들을 구분해내어 죽인 수가 4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경계짓기를 충격적으로 사건화한 이 작품을 강의에서 다루게 되면 사회적 금긋기에 관해 학생들과 논의하곤 한다. ‘노키즈존’은 단골 주제다. 사실 10년쯤 된 묵은 논쟁으로, 언론에서는 2014년부터 이슈로 다루기 시작했다. 여행이 일상화하고 외식소비가 늘던 때였다. 출산율에 국가 명운이 달렸다며 육아문제가 사회화한 시기이기도 했다. 노키즈존은 가정 밖 육아와 충돌한 미성숙한 여가문화의 한 단면이라 봐도 무리가 없다.
2017년 국가기관이 개입하기도 했다. 9살 자녀와 제주도 식당을 찾았다가 거부당한 부모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식당 주인도 이유는 있었다. 놀다 다친 아이의 치료비를 달라거나 기저귀를 버려놓고 가는 손님들이 있어 부득이 어린이 입장을 제한했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이 출입금지는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행위라고 인권위는 결정했다.
이후 인식 전환이 요청됐지만 노키즈존은 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 노키즈존 운영에 긍정하는 응답이 71%나 됐다니, 노키즈존 확산에 사회의 암묵적 동의가 있는 셈이다. 매장 분위기를 위해 혹은 어린이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은 얼핏 타당해 보인다. 어린이의 거친 행동과 한술 더 뜨는 부모의 행각에 업주의 자유를 옹호하는 여론도 높다.
그런데 어른의 진상에 비해 어린이의 거친 행동이 어린이 집단을 배제할 만큼 파괴적일까. 반말로 주문하는 무례나 식당 안이 떠나가라 목청 높이는 주취자들의 민폐는 말하자면 입 아프다. 그릇에 담뱃재와 침, 가래를 뱉어 놓는 일도 부지기수다. 소위 ‘먹튀’도 빈번하다. 대학가나 번화가 인근 경찰지구대에는 주말마다 식당 내 행패 신고가 차고 넘친다.
사실 대부분 진상손님은 다양한 나이대의 성인들이다. 하지만 ‘자유로울’ 권리로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업주들은 여러 위험요인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웬만해선 배제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똥기저귀를 버린 행위의 주체 역시 성인이지만 ‘노키즈존’이라는 명명에서 보듯 배제 대상은 어린이다. 그리고 선량한 교양인을 자처하는 성인들은 어린이 배제를 지지한다.
여기서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은 정치적 발언권은커녕 자기보호 능력조차 없는 어린이를 타자로 구성하는 용이성이다. 사회의 주체인 성인은 그 어떤 무례에도 배제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타자인 어린이의 통제되지 않은 민폐는 봐줄 수 없다는, 약자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태도를 노키즈존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배제하고 배제당하는 차별의 경험이 초래할 사회 균열의 위기 신호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너도 당해봐라’식의 다양한 출입금지 구역도 속속 출현 중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데, 나이로 배제하고, 학벌로 구분 짓고, 재산으로 차별하는 붙이기 나름인 그 이유에서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찾을 바는 배제할 이유가 아닌 공존할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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