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한겨레 2023. 9. 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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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첫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승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도 많지는 않을 거다.

첫날과 마지막 날이 반의어이면서도 그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듯이, 삶과 죽음도 반의어이기만 한 건 아닐 거다.

그래서 주변인에게 방문인사 하는 것도 망각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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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의 사사로운 사전]

게티이미지뱅크

[원도의 사사로운 사전] 원도 | 작가·경찰관

세상에 태어난 첫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승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도 많지는 않을 거다. ‘첫날’의 반의어가 ‘마지막 날’임에도 결론은 비슷하다.

집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한 경우, 경찰은 변사자가 쓰러졌던 주거지를 찾아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의료기관 이외의 장소에서 사람이 사망했을 때 타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변사자가 최초로 발견된 지점을 확인하는 게 절차다. 집 내부는 어수선하다. 119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흔적, 변사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느라 급했던 이들에 의해 거실 곳곳에 찍힌 신발 자국, 저녁에 가족들을 위해 끓이려고 오전에 사 왔던 국거리, 내일 약속된 모임을 적어 놓은 달력, 쭈그러진 채 걸려 있는 치약…. 미완성으로 가득한 현장에서 유일한 완결을 맺은 변사자의 삶은 이대로 끝인 걸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과학수사과에서 현장감식 업무를 담당해오면서 수백명 변사자를 보았다. ‘수백구의 시체’ 대신 ‘수백명의 변사자’라고 쓴 이유는, 죽음이 한사람의 삶을 매듭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을 ‘구’로 수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구’로 수치화되는 이들이 불과 얼마 전에는 ‘명’으로 헤아려지던 생명이었으니까. 살아 호흡하던 사람이 변사자라는 신분으로 옮겨 갔을 뿐이라 생각하고 싶다.

첫날과 마지막 날이 반의어이면서도 그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듯이, 삶과 죽음도 반의어이기만 한 건 아닐 거다. 죽음은 또 하나의 쉼표일 뿐 마침표가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남은 사람들이 변사자가 떠난 자리 주변에 머무르며 끝까지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가 남긴 작품을 두고두고 보전하며 그를 기리는 마음이, 어떤 형태로든 그의 새 출발에 기인하지 않을까. 기도의 과정과 결과는 형상화되어 나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효험이 없는 행위는 아니다. 기도 대상자에게 즉각적인 기적은 일어나지 않더라도,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누군가의 마음은 어루만져 준다. 그 과정에서 유발되는 치유가 곧 기적이라 믿는다. 이 믿음도 다른 이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탠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가끔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만 같은 사건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억울하게 사망한 피해자가 유족이나 친구, 아니면 누구라도 좋으니 꿈에 나타나서 범인 또는 죽기 직전 목격한 장면과 범행 과정을 진술해줬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죽음이라는 쉼표를 찍은 이후 앞의 내용은 까맣게 잊은 채로 완전히 새로운 글을 써내려가길 진심으로 소망하게 된다. 안전하고 즐거운, 갑작스러움이라곤 없는 행복을 누리느라 전생의 고통을 털어버렸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주변인에게 방문인사 하는 것도 망각한 거라고. 부디 그렇게.

경찰관으로 신분이 바뀌었던 첫날이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가 마지막 근무 날이 될지도 알 수 없다. 느닷없이 그만둘 수도, 우직하게 정년을 채울 수도 있다. 입직과 퇴직이라는 쉼표 사이의 과정이 그리 간단하거나 가벼운 건 결코 아니지만, 쉼표 이후에 쓰일 글은 온전히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써내려가길 바란다.

당신의 마지막을 나의 마지막처럼 숭고하게 여기는, 당신이 세상에서 숨 쉬고 있을 때 지은 마지막 표정에서 자신의 표정을 읽는 경찰관이 최소 한명은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위로로 다가가기를 작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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