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파이어' 페촐트 감독 "한평생 꿈이었던 '희극' 첫 도전"
"한국만큼 관객 집중력 좋은 곳 못 봐…최고의 시간"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독일 영화의 거장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그간 정치·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거나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을 주로 선보여왔다.
역사 3부작으로 일컬어지는 '바바라'(2012), '피닉스'(2014), '트랜짓'(2018)은 물론이고 사랑 이야기인 '운디네'(2020) 역시 가벼움과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었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신작 '어파이어'는 페촐트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코믹하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한국 개봉을 기념해 최근 방한한 페촐트 감독을 6일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서 만나 색다른 작품을 선보이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는 "희극을 만드는 게 한평생의 꿈이었다"면서 "오랜 신뢰로 다져진 배우들, 제작진과 함께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만약 제게 최고의 비극영화나 공포영화를 50편 꼽아보라고 하면 어렵지 않게 댈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최고의 희극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하기 힘듭니다. 그만큼 코미디는 어려운 장르여서 오랫동안 꿈만 꿔오다가 처음으로 시도하게 됐습니다."
그는 원래 디스토피아 배경의 작품을 집필 중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걸려 크게 앓은 뒤 더 이상 암울한 세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아졌다고 한다. 펜데믹 당시 그가 그리워했던 삶, 여름, 대중을 떠올리며 각본을 쓴 게 '어파이어'다.
"몇 년 전 독일 정부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청년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공간을 닫아버렸어요. 이런 극단적인 정책은 제게 큰 충격이었어요. 제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어파이어'를 만든 것도 젊은이들에게 대화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극장)을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집필 중인 소설을 마무리하기 위해 해변 마을에 간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분)이 예기치 않게 나디아(파울라 베어) 등 또래들과 한집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찌질한 남자 주인공과 그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여자 주인공,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 등이 웃음을 준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 또한 눈길을 끄는데, 이는 촬영 전 모든 배우가 함께 워크숍을 가야 한다는 페촐트 감독의 원칙 덕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배우가 3일간 미리 현장에 가서 캐릭터의 감정을 느꼈다"며 "이후 촬영이 시작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감정이 생기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레온 역의 슈베르트는 자기 배역에 너무 빠져 있어 촬영 내내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레온은 다른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면서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페촐트 감독은 "슈베르트는 환상적인 배우지만, 촬영 동안 매우 고통스러워했다"고 회상했다.
"워크숍 때까지만 해도 재미있게 잘 지내던 슈베르트가 촬영 시작 하루 만에 고독해졌어요. 점점 레온이 되어가면서 더더욱 외로워졌죠. 아마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거예요. 어느 날은 단독 촬영을 끝내고 다른 배우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더니 '저기 나쁜 놈들이 있어'라고 하더군요. 하하."
페촐트 감독은 레온 캐릭터에 어느 정도 자기 모습이 투영됐다고도 털어놨다.
그는 "이 영화를 자전적 얘기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면서도 "가족들이 '지금은' 내가 레온 같지 않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나디아를 연기한 베어는 이 영화가 페촐트 감독과 함께한 세 번째 작품이다. '트랜짓', '운디네'에 이어 '어파이어'까지 3편 연속 주연을 꿰찬 그는 명실상부 페촐트 감독의 페르소나다.
페촐트 감독은 베어를 두고 "유명 배우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고전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니다"라며 "영화에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운디네' 촬영을 마치고서 베어에게 앞으로는 좀 더 독립적이고 자신감 있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그는 믿지 않으면서 '그것참 보고 싶네요'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나디아 역을 제안하면서 '남자가 욕망하지만, 그 욕망이 필요하지 않은 여성'이라고 소개했어요. 베어 그 자체의 모습이기도 했죠."
페촐트 감독이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딸이 한국을 좋아하는 것도 방한 이유 중 하나였다.
페촐트 감독은 "한국 관객만큼 집중력이 좋은 관객을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어 "한국 관객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들이 가진 지식과 열정이 한국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했다"며 "이를 직접 확인하게 돼 기쁜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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