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달러 헬스케어시장 선점”…美日 ‘의·공학 통합’ 경쟁

강민호 기자(minhokang@mk.co.kr) 2023. 9. 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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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KAIST·포스텍 의전원 설립 허용 검토
“신종 감염병, 고령화 사회 등 현대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이오, 공학,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학문이 융합되는 컨버전스 사이언스가 필요합니다.”

도쿄의과치과대학과 통합을 앞둔 도쿄공업대학의 마스 가즈야 총장은 통합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전 세계적인 인구 증가, 고령화 및 질병 유행 등 기존 공학, 생명과학, 의학 등의 틀 안에서 극복하기 어려웠던 문제 해결을 위해 의학과 공학·생명과학 간 합종연횡이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선진국들은 기존 임상 중심의 의대틀을 벗어나 공학, IT 등과 결합한 연구 중심 의대 설립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의사 자격증을 가진 과학자 이른바 ‘의과학자(MD-PhD)’ 양성에 힘쓰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의사 양성 제도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도 임상 중심에서 벗어나 연구 중심 의대를 통한 의과학자 양성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도쿄공대는 도쿄의치대와 2024년 통합한 후 ‘도쿄과학대(가칭)’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두 대학의 통합 발표는 변화와 혁신을 조심스러워 하는 일본 학계에 큰 충격을 던지는 사건이었다.

두 곳은 일본 내에서 손꼽히는 명문 대학이다. 올해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사 QS가 발표한 일본 내 대학 순위에서 도쿄공대는 4위, 도쿄의치대는 1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두 대학 모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택했다.

도쿄공대 관계자는 “전통적인 자연과학과 공학 등에 의학, 생명공학, 사회과학 등을 포함하는 융합 학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며 “의대 설립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도쿄의치대와의 통합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의학과 공학 간 합종연횡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2018년 일리노이대 어배너 섐페인(UIUC)은 공학과 의학을 융합한 의과대학 ‘칼 일리노이 의대(CICM)’를 설립했다. ‘의학과 공학의 교차점에 세워진 미국 최초의 의과대학’을 표방한 CICM은 의과학자 양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설립 단계에서부터 수학, 컴퓨터 프로그래밍, 데이터 사이언스 등 공학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입학을 목표로 했던 CICM은 신입생의 80%가량이 공학 전공자다. CICM은 의학·공학 융합을 통해 만성신장질환 진단키트, 코로나19 신속진단 시스템 등 다양한 시제품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통합까지는 아니어도 의대와 공대 간 협업 트렌드가 뚜렷하다. HST(Health Sciences and Technology)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하버드 의대 간 의공학 통합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양쪽 교수진의 지도를 받을 뿐만 아니라 MIT 공학부와 하버드 의대에 모두 소속된다. 학위는 하버드가 수여하는 MD나 MIT가 수여하는 PhD를 받는다. 광간섭단층촬영(OCT)을 망막 검사에 처음 적용해 생체검사에 의존하던 망막 검사 패러다임을 바꾼 데이비드 황 하버드 의대 교수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됐다.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기존 학부제로 운영되는 의과대학을 두고 새 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싱가포르국립대(NUS)는 2003년 미국 듀크대와 협약을 맺어 연구 중심의 4년제 Duke-NUS 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의대와 공대 간 융합 말고도 기존 의대 역시 연구 중심 시스템을 강화하는 추세다. 예컨대 세계 최고로 알려진 하버드 의대와 존스홉킨스 의대는 대표적인 연구 중심 대학이다. 지난해 미국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내 의학 분야 1위와 2위는 하버드 의대와 존스홉킨스 의대가 차지했다. 하지만 경증질환 치료를 뜻하는 ‘1차 의료’ 순위에서는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같은 매체에서 선정한 1차 의료 부문 순위에서 하버드 의대와 존스홉킨스 의대는 각각 22위, 92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연구 중심인 하버드 의대와 존스홉킨스 의대는 중증질환과 의료기술 연구,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등에 전념한다는 의미다.

존스홉킨스 의대 등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풍부한 예산과 인력 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존스홉킨스 의대는 내과 교수진 규모만 해도 공과대의 2배 이상인 700여 명이다. 이와 더불어 2억달러 규모 연구비를 운영하고 있다.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서는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NIH는 의과학자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 중단 위협 요소 등에 관해 조사하고, 각 대학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구 지원 프로그램까지 운영한다. 국가가 나서서 의과학자 수요를 예측하고 연구자에게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지원하는 것이다.

한 국내 과학계 관계자는 “의과학자 양성은 산업 측면에서도 한국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 헬스케어시장 규모는 약 2조달러다. 반도체시장보다 4배 이상 크다.

[도쿄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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