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살만·푸틴 '감산 동맹'…바이든 아픈 곳 때렸다
사우디·러 연말까지 감산 유지
OPEC+ 동참 유력하자 가격 쑥
고유가로 인플레 자극 우려
바이든, 재선가도 암초 만나
美대선 간접개입 시도나서
세계 양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 결정으로 국제유가가 8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올해 들어 처음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유가 상승이 자칫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어 미국의 긴축 종료 전망에 돌발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특히 내년 재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전일보다 1.04달러(1.2%) 오른 배럴당 90.04달러에 마감했다. 이날 장중 최고치는 배럴당 90.20달러에 달했다. 이는 올해 최고치이자 2022년 11월 16일 이후 약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한때 90달러를 넘어섰다가 전일보다 1.14달러(1.3%) 상승한 배럴당 86.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사우디 국영 매체 SPA통신에서 사우디가 하루 100만배럴에 달하는 자발적 감산 조치를 올해 말까지 연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며 국제유가가 크게 뛰었다. 당초 사우디의 감산 조치는 10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연말로 기간이 늘어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10~12월까지도 사우디의 일일 원유 생산량은 900만배럴에 그친다.
앞서 러시아도 하루 30만배럴의 석유 수출 규모 축소를 연말까지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우디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산유국 협의체가 자발적 감산을 연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날 UBS는 올해 4분기 원유가 하루에 약 150만배럴 부족하며 연말 브렌트유 가격이 95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OPEC+ 중추인 사우디와 러시아가 각자 이권을 위해 담합했다고 분석한다. 이번 대규모 감산 결정이 석유 수익 증대와 함께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장기화로 자금 조달에 급급한 러시아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인 '네옴시티'를 추진 중인 사우디로서는 유가가 떨어지면 국가적 위기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 석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도 양국이 감산을 결정한 배경이다. 중국의 석유 소비량이 줄어들 경우 유가 급락이 예상되는 만큼 감산을 통해 유가를 방어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석유업계 관계자 말을 인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석유 공급량을 활용해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면서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협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시사했으며, 사우디는 미국이 이란과의 핵 합의 파기에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처음 방문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러시아 성향으로 알려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유가 상승을 유도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블룸버그는 이번 감산 결정이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화약고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유가 인상은 갤런당 4달러(현재 3.81달러) 위협을 피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에 불쾌감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급등한 물가가 다소 안정되는 시기에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스 러너 트루이스트어드바이저리 수석시장전략가는 "유가가 오르면 물가 상승이 다시 나타나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사람들이 기대하는 연착륙과 경기 둔화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언급했다.
긴축 사이클 종료를 기대했던 시장에서는 이날 국채 금리와 달러인덱스 등이 요동치며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대변했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 소식이 나온 후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전날 4.89%에서 급등해 4.96%를 넘어섰다가 4.94%에 마감했다. 달러인덱스도 같은 기간 104.24에서 104.81로 0.57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최대 9%에서 최근 3%대까지 떨어졌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V'자형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CPI 상승률 2%대를 기다리며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던 연준으로서는 자칫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추가 인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스티븐 이네스 SPI자산운용 파트너는 "유가 상승으로 8월 CPI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수준을 원하는 목표에 맞추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영태 기자 / 뉴욕 윤원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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