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배웠는데 은퇴라니” “삶의 활력”…일하는 80대가 몰려온다
“일 하면서 젊은 사람과 소통할 때 활력 느껴”
“나이로 일이 주는 보람 묻히게 하기 싫어”
獨·日 고령층 노동 시장 진입 돕는 데 적극적
[헤럴드경제=안효정·김빛나 기자] 꽃차 소믈리에로 활동 중인 배정자(82) 씨는 80살에 창업을 한 ‘늦깎이 사장’이다. 배씨는 은퇴한 지 15년 만에 취미로 시작한 다도를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배씨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땐 늘어지고 나태해지는 시간이 많았다. 자존감도 자꾸 떨어졌고.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해야 삶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당에서 키운 꽃으로 직접 차를 우리는 배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에 4팀만 예약을 받는 식으로 가게를 운영하는데,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다.
‘100세 인생’을 맞아 일하는 ‘옥토제너리언(80대·Octogenarian)’이 늘고 있다. 증가 속도는 60대나 70대 등 다른 고령층에 비해 가파르다. 일할 의욕이 있는 80대 인구가 늘고 있지만 이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치 않다.
80대 이상 취업자 수 증가 속도는 고령층 다른 연령대의 증가 속도를 압도한다. 5일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의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 증가 현황과 원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80세 이상 취업자 수는 지난해 기준 36만2000명이다. 5년 전인 2018년(19만 8000명)과 비교했을 때 16만4000명이 늘어나 연평균 16.3%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65~69세는 9.1%, 60~74세는 7.6%, 75~79세는 6.9%의 연평균 증가율을 보였다. 80세 이상 고용률도 올랐다. 2018년 12.5%였던 80세 이상 고용률은 지난해 17%로 높아졌다.
최근 은퇴를 모르는 80대가 늘어난 데엔 고령화와 기대수명 연장 등 인구사회학적 특성의 영향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0세 이상 인구는 221만 명이다. 전체 노인(65세 이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로 노인 4명 중 1명이 80세 이상인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OECD 국가(평균 80.3년) 중 상위권에 속하며, 10년 전 대비 2.2년 증가했다.
80대 노인이 일터로 뛰어든 이유는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배씨의 경우 ‘활력 유지’가 가장 큰 배경이 됐다. 배씨는 차방을 운영한 후로 무력증 등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배씨는 “차를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 삶의 활력을 얻게 됐다”고 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일자리를 찾는 80대도 많다. 한국은행은 ‘고령층 고용률 상승요인 분석’ 보고서에서 “고령층이 필요로 하는 생활비가 빠르게 상승한 점이 고령층의 노동 공급 확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2011~2020년 사이 고령층의 실질 소비지출은 의료비와 식료품, 주거비를 중심으로 29.2% 증가했는데, 이는 전체 소비 증가율(7.6%)의 4배가 넘는 수치다.
직업에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계속 활용하고 싶어하는 시니어들도 많다. 서울에서 30년 가까이 약사로 일하는 80대 최모 씨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몇십 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배웠다”며 “나이 하나 때문에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묻어두면 너무 아깝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노인의 풍부한 경력과 경험이 노동시장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노인들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80대가 근로 활동을 하는 건 그 세월만큼 쌓아온 전문 지식과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고 발휘되는 것이므로 사회에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노인 일자리를 지원하는 용인시니어클럽의 심광진 사무과장은 “시니어클럽에 10년 넘게 일하는 80대 근로자들이 여럿 있는데 다들 경륜도 상당하고 다양한 연령대 직원들까지 아울러 챙기면서 일한다”며 조직 융합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일하는 80대는 증가하는데 아직까지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시 어르신 취업지원센터의 민간 일자리 공고란을 살펴보면, 지난달 1일부터 현재까지 올라온 시니어 구인 공고 102건 중 71건(69.6%)은 ‘60대까지 지원 가능’ ‘정년 만65세에 도래하지 않은 자’ 등 나이 제한이 있어 80대가 지원할 수 없다. 연령 무관을 조건으로 내걸어 80대도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는 31건 정도다.
한국의 고령화 추이를 감안해 80대 고령층도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고용정보원 박진희 연구원은 “앞으로 저출생 등으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가운데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는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고령자가 원하는 일자리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재취업 지원 서비스나 고령자에게 노동시장 정보와 민간 부문에서 창출되는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에선 고령 인구를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민간 기업이 나서 정년을 없앤 경우도 있다. 일본의 가전제품 판매기업 노지마 등은 2년 전 80세 고용 상한을 폐지해 직종에 상관없이 사원이 희망할 때까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열어놨다.
고령 인구의 노동 시장 진출을 위해 정책적 지원을 마련하는 국가도 있다. 독일은 ‘자격 기회의 법률’과 ‘내일 근로 법률’ 등의 제도를 통해 노인의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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