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큰손' 2만명 몰려 …"인기작품, 고민하다 놓칠라"
6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는 미술 시장 불황의 그늘이 없었다.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가 동시에 막을 올리자 전 세계 VIP 컬렉터(수집가) 2만여 명이 몰려왔다.
지난해 첫 프리즈 서울과 마찬가지로 인기 작품은 이미 사전판매됐거나 개막과 동시에 '완판'을 알렸다. 미국 대형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는 일본 거장 구사마 야요이의 회화 '붉은 신의 호박'을 580만달러(약 77억원)에 한국 고객에게 팔았다고 밝혔다. 핑크팬더를 그리는 미국 작가 캐서린 번하트 회화도 25만달러(약 3억원)에 사전판매됐다.
데이비드 즈워너 관계자는 "야요이의 무한그물 회화 '인피니티 네트'(380만달러)와 황금색 청동 조각 '호박'(650만달러)에 대해 구매 의사를 밝히는 컬렉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한남동에 지점을 둔 미국 대형 갤러리 페이스 역시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의 125만달러(약 16억원)짜리 유화뿐만 아니라 대부분 출품작을 사전판매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독일 갤러리 에스터쉬퍼는 일본계 영국 작가 사이먼 후지와라 회화 5점을 5만유로(약 7000만원)에서 10만유로(약 1억5000만원)에 팔았다. 베를린 갤러리 스푸르스 마거스는 전면에 내건 독일 여성 작가 로제마리 트로켈의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을 18억원에 사립미술관에 판매하는 등 호조세를 보였다. 갤러리 관계자는 "작년만큼 '오픈런'은 없었지만 고객층이 다채로워지고 문의가 많았다. 특히 중국에서 온 개인 컬렉터가 트로켈의 5억원대 소형 작품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엔데믹에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 홍콩 등에서 컬렉터들이 몰려오면서 한국 작가들 작품도 강세를 보였다. 여성 추상화 거장 이성자 회화로만 꾸민 갤러리현대 부스에는 세계 미술관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수억 원대) 작품의 사전판매가 일부 이뤄졌고, 세계적인 미술관 5곳 이상에서 1시간 만에 소장 문의를 해왔다. 이성자를 세계로 알릴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홍콩 고객의 방문이 급증해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로 자리 잡았으나 중국의 내정 간섭에 위상이 흔들리는 아트바젤 홍콩을 능가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웬디 수 화이트큐브 디렉터는 "홍콩은 물론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프리즈 서울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구입했다"며 "우리 갤러리도 트레이시 에민 등의 수억 원대 주요 작품들을 팔았고 미술관들과 판매를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페로탕 갤러리 부스에서 만난 30대 중국 컬렉터 체리 징 쉬는 "상하이에서 컬렉터 친구들과 함께 한국 문화를 즐기고 작품을 구매하러 왔다. 젊은 세대가 대거 몰리고 있는 한국 미술 시장은 역동적이어서 다채로운 개성과 색깔을 찾을 수 있는 프리즈에 매년 계속 올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올해 프리즈에선 수백억 원대 대작을 찾기 어려웠다. 작년 600억원대 피카소 작품을 가져온 뉴욕 에쿼벨라 갤러리 부스 같은 블록버스터 전시도 없었다. 지난해 독일 추상화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500만달러대 색채 유화 '촛불'이 걸려 있던 미국 대형 갤러리 가고시안 부스 전면에는 영국 출신 흑인 화가 자데 파도주티미의 50만파운드(약 8억4000만원)대 회화와 미국 작가 조너스 우드의 380만달러(약 51억원)대 회화 '밤에 피어난 풍경을 담은 화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갤러리스트는 "국내에서 해외로 70억원 이상 송금이 어려워 100억원대 작품을 아예 안 가져왔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한편 프리즈 서울과 나란히 열린 키아프는 손님이 많지 않아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판매는 중저가의 '가성비' 좋은 작품이 인기가 많았다.
국제갤러리는 우고 론디노네 솔로 부스를 열어 개막 직후 일출을 그린 소품인 5만5000달러(7400만원)대 '매티턱(Mattituck)' 연작 10점을 완판했다. 3억~4억원대 말 조각인 '호라이즌' 연작도 인기를 끌었다. 갤러리현대는 수억 원대 포르쉐를 음악과 함께 연출한 설치 작업으로 '모터쇼'를 연상시키는 라이언 갠더의 솔로 부스를 꾸며 큰 화제를 모았다.
크리스테아 로버츠 갤러리도 로이 리히텐슈타인,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고가 작품을 걸어 눈길을 끌었다. 암스테르담 갤러리 딜라이브는 인기 작가 로카쿠 아야코의 수억 원대 골판자 그림 20여 점을 출품했는데 개막 직후 절반가량을 팔아 최고 인기 부스로 등극했다. 키아프에서는 중국 컬렉터들 10여 명이 아트가이드와 함께 투어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국내외 12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 프리즈는 9일까지, 국내외 210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한국화랑협회 키아프는 10일까지 열린다.
[이한나 기자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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