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사퇴 '파행' 연금재정계산위…"반쪽짜리案" 비판 이유
①'초저출산' 추세, 미래에도 지속?…"연금 논의 자체 불가"
②연금재정 안정=기금 적립 '답정너' 아냐…조달수단 다양화必
③위원회 구성부터 "편향 일변도" 논란…2/3가 '재정안정론자'
최근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연금개혁 방향을 제시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는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해온 두 위원이 직전에 사퇴하는 등 시작부터 파행으로 치달았다. 재정계산위 명의로 발표된 보고서가 '더 받는' 방안을 싣지 않는 등 재정안정에만 지나치게 방점이 찍혔다는 반발에서다.
재정안정파는 연기금이 일정 규모 이상 유지돼야 저출산·고령화로 급증할 수급대상에게 급여를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소득보장 강화 측은 공적연금의 목적 자체가 국민들의 노후소득 보장에 있는 만큼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 인상을 전제하지 않는 개혁은 '주객전도'라는 입장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노인빈곤율이 최고 수준인 국내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논의 내내 평행선을 달렸던 재정계산위가 공개한 보고서엔 현재 9%(기준소득월액 대비)인 보험료율을 12%·15%·18%로 각각 올리는 방안만이 실렸다. 여기에 수급개시 연령을 66세·67세·68세로 늦추거나 기금운용수익률이 오르는 변수를 조합한 시나리오 개수만 18개에 달하지만, 소득대체율 인상안(案)은 아예 누락됐다.
스무 차례 회의 끝에 위원직에서 자진사퇴한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보고서에 보장강화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별도 보고서를 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소득대체율을 현 40%에서 50%까지 올리자는 주장을 펴온 이들은 "현재의 재정계산위는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본질을 구현하고 합리적이고 공평한 재정안정 방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위원회 내홍을 비롯해 시민사회계에서도 '반쪽짜리 보고서'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6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평가 긴급토론회')를 토대로 정리했다.
①유례없는 '초저출산', 미래에도 고정값?…"연금논의 무의미"
연금재정계산위원회의 논의 '밑그림'이 된 것은 올 초 발표된 재정추계 결과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2003년부터 5년마다 실시돼 이번에 5차를 맞았다. 연금재정 수지 등을 계산해 미래 연기금 상황을 전망하고 큰 틀의 운용계획을 짜기 위함이다. 이 재정추계에는 인구·거시경제 등 주요 변수가 '가정적'으로 적용된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가장 최신인 통계를 기준으로 삼다 보니 70년 후(2093년)까지를 내다보는 데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과거 데이터 준용으로 전망 자체가 다소 보수적이라는 한계도 있다.
재정추계 전문위원회에 참여했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확실성이 가미된 '시나리오'에 불과한데 발표할 땐 확정된 미래처럼 간주된다"며 "2040년이 되면 (실질)경제성장률이 0%대로 진입한다는 게 거의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지난해 기준 0.78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큰 변화 없이 지속된다는 가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 상황이 고착화될 경우, 연금을 떠나 사회의 모든 측면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취지다.
앞서 재정추계위는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2021) 중위가정을 적용해 국내 출산율이 내년도 0.70명으로 바닥을 찍은 뒤 완만하게 반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로 연기됐던 결혼 회복세, 2차 에코세대(91년생)의 30대 진입 등 2030년 0.96명, 2046년 이후엔 1.21명으로 오를 거라는 계산이다.
추후 하락해도 1.3명대는 유지될 것으로 봤던 4차 재정추계(2018) 당시보다 악화된 수치다.
정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초저출산'이라 할 때 (출산율은) 1.3(명)이다. 그보다 밑인 나라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고, OECD 평균이 1.6명인데 일본도 그 정도는 된다"며 "이렇게 상정을 해버리면 연금이고 뭐고 한국 경제는 파탄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상황에선) 인구 절반에 가까운 노인을 부양하는 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10%도 채 안 쓰는데 미래세대가 어마어마한 보험료를 내야 한단 결론이 나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초저출산이 향후 수십 년 간 계속된다고 하면, (정부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놓고 '우린 열심히 하지만, 출산율을 1.2명 이상으로 만들 순 없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정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경제 거시전망과 재정추계도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령층과 '경력단절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는 등 경제활동참가율을 적극적으로 제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②연금재정 안정은 '무조건' 기금 적립이 답?
재정계산위는 공청회 보고서에서 위원회의 과업으로 "재정계산기간(2023~2093년) 중에 적립기금이 유지될 수 있는 방안(2023년 현재 20세인 가입자의 평균수명기간 동안 적립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함)을 제시하는 것"을 꼽았다. 다시 말해, '연기금 유지'를 최대 목적으로 내세운 셈이다.
5차 재정추계 결과, 연기금 소진 예상시점이 2057년(4차 추계)에서 2055년으로 2년 앞당겨진 점은 이러한 목표의 가장 강력한 근거였다.
이에 반해 남찬섭 교수 등 보장강화 측에선 기금을 쌓아두는 것만이 재정 안정의 유일한 정답이 아니란 점을 강조해 왔다.
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강사는 "20년간 재정 계산이란 걸 한 결과로 집합적 제도인 공적연금을 개인제도인 것처럼 만드는 데 국가가 성공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국민연금은 '내가 얼마를 부었으면 부은 돈에 대해 원금과 이자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적금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금제도에서 세대 간 연대를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들이 현재 노년인 분들의 노후 소득을 감당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라며 "적립기금 유지만이 재정 안정이라는 프레임을 관철시키려다 보니 이번 5차 (추계) 때 '부분완전적립방식'이라는 기괴한 용어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연금의) 재정 운영방식은 '적립식이냐, 부과 방식이냐'일 뿐이고 부과식은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제도만이 운영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부과방식으로 하면 적립금을 (꼭) 보유할 필요가 없다. 대표적으로 (완전부과방식인) 독일 같은 나라들은 매우 소규모의 적립기금을 '준비금'이란 이름으로 갖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근로소득 기반 보험료 수입인 누적 기금으로만 급여지출을 충당하려다 보니 미래 세대의 부담을 되레 더 가중시키는 모순이 빚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금 고갈에 대한 젊은층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면서, 정작 재정 확보수단을 다양화하려는 시도는 일체 배제했다는 것이다.
국고 투입 등 보험료 부과 기반을 넓히려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정세은 교수는 "GDP의 분배구조를 보면 피고용자 보수가 45% 정도를 차지한다. 기업 및 재산소득은 26% 정도를 차지하는데 여기엔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지 않다"고 짚었다.
이어 "일단은 피용자 보수 전체에 보험료가 부과되도록 부담기반을 넓히고 장기적으로 기업 및 재산소득도 노후소득 보장에 기여하게 해야 한다"며 "특히 고령인구가 많아질수록 이들 중 고소득·고자산계층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기여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5차 기금운용발전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이찬진 변호사도 기금 운용수익률 제고 압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수익률이 높은) 위험자산 (투자)비중을 극대화하자는 결정을 했을 때 수시로 발생하는 손실 등 제도·기금운용상 위험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란 질문의 답은 '없다'다"라고 밝혔다.
③논의체 구성부터 '편향' 논란…"위원회 2/3가 재정안정론"
사실 재정계산위의 내부 이견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연금개혁 논의가 본격화되면서부터 '재정안정'과 '보장강화' 측은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공적연금을 바라보는 시각 차가 워낙 큰 탓이다.
연금행동은 갈등이 표출되는 과정에서의 '편향성'이 더 문제적이라고 본다. 남 교수는 우선 재정계산에 관한 외부자문기구 편제상 문제를 들었다. 그간 △재정추계과정 △기금운용 △제도개선 관련 세 기구가 수평적으로 구성·운영돼온 데 비해 5차 재정계산에서는 재정계산위를 재정추계전문위·기금운용발전전문위의 '상위 위원회'로 뒀다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제도발전(또는 제도개선)'이라는 용어를 위원회 명칭에서 삭제함으로써 전반적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실종됐다는 게 남 교수의 주장이다. 남 교수는 "명칭 변경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정부는 재정계산위에서 제도 발전도 논의하니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지만, 제도 개선을 (의도적으로) 재정안정에 종속시키려 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정계산위도 '재정안정론'을 견지해온 위원들 위주로 꾸려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용하 위원장(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을 포함한 15명의 위원 중 정부 측 위원과 김 위원장 등 6명을 뺀 9명 중 6명은 재정안정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남 교수와 주은선 교수 등 단 두 명만이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남 교수는 "전문가단체와 가입자단체 추천 등을 통해 위촉했고 특별히 편향된 구성을 의도하지 않았단 게 정부 입장이지만 결과적으로 재정안정론에 치우친 구성이 위원회 논의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낮아 일정 수준 인상할 필요가 있다. 법정 소득대체율 인상이 크레딧 및 보험료 지원 강화와 함께 이뤄져야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된 노후준비수단'으로 국민연금을 꼽는 MZ 세대가 증가세란 점을 들어 "당사자의 기여가 전제되고 권리성이 강한 국민연금 강화가 고령화 등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핵심기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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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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