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디지털 혁신을 위한 아날로그 가치
1년 안에 과제 75%를 끝내야
규율·실행 중심으로 속도 내고
고객이란 본래 목적 잊지 말길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던 독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사석에서 "우리 회사에는 루프트한자보다도 많은 파일럿(항공기 조종사)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혁신을 원했지만 실제 현장 임원들과 실무진은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다 보니 파일럿 프로젝트 수가 독일 최대 항공사의 파일럿 수보다도 많아졌다는 한탄조의 농담이었다.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을 추구하지만, 데이터와 디지털 역량 부족 등을 이유로 조그맣게 시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파일럿 형태의 디지털 혁신은 대부분 실패한다. 원래 일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파일럿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의 대부분은 1년 안에 목표한 디지털 과제의 75%를 완결한다. 이렇게 디지털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 가치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먼저 규율과 실행 중심이다. 개개 디지털 과제의 목표, 중간 마일스톤과 스케줄을 명확히 하고 과제별 책임자를 지정해 주 단위, 월 단위로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CTO(Chief Transformation Officer·최고변화관리책임자)는 정기적으로 과제 담당 임원과 마주 앉아 마일스톤 달성 여부를 점검하고 달성하지 못할 경우 대비책을 논의한다.
이러한 규율과 실행 중심의 드라이브가 디지털 혁신에 중요한 것은 기술과 비즈니스가 엮이는 접점이 무수히 많고, 다수의 이해관계자 간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호주의 통신 기업 텔스트라의 디지털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끈 앤디 펜 전 CEO는 "디지털 혁신의 초장기에 실행의 규율을 갖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디지털 혁신이 추구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아날로그적 가치는 고객 중심이다. 디지털 혁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즈니스 가치 창출의 수단이며, 가치 창출의 핵심은 고객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목적 함수는 잊은 채 어떤 특정 프로세스와 업무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 DBS는 디지털 혁신의 최종 목적을 '고객 경험을 즐겁게'로 두고 모든 디지털 과제들이 이 목적에 부합하는지 평가했다. 고객의 수많은 은행 이용 상황과 과정(고객 여정)을 상정하고, 하나하나의 경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어떤 디지털 기술을 도입할지 고민한 것이다.
인재와 역량 강화는 디지털 혁신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아날로그적 가치다. 어떻게 외부로부터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고, (일부 기술 인력이 아닌) 회사 전체의 디지털 역량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계획 없이 외부 자문사에 의존하는 디지털 혁신은 단발성이 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완구업체 레고는 선진국의 출산율 저하와 디지털 게임의 부상으로 2000년대 중반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면적인 디지털 혁신에 착수한 레고는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블록 쌓기 게임, 다양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로봇, 레고 캐릭터를 활용한 커뮤니티 앱과 같이 이전의 블록 제조업체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디지털 기반 상품을 10년 이상 성공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1000명이 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확보하고 이들이 코펜하겐뿐 아니라 상하이와 런던 등 세계 각지의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레고의 매출은 무려 5배 증가했다. 철강업 특성상 외부 디지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인도의 타타스틸은 아예 내부에 디지털 아카데미를 설립해 수백 명의 엔지니어에게 디지털 교육을 실시했고, 내부적으로 키운 디지털 인재들에 의해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타타스틸을 디지털 혁신을 선도한 '등대공장'으로 선정한 바 있다.
[유원식 맥킨지 시니어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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