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늪 빠진’ 러시아가 내민 손... ‘두렵고 배고픈’ 북한이 잡았다

권경성 2023. 9. 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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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정상회담 배경 전문가들 분석]
미국, “봉쇄가 러 궁지로 몰아” 판단
고립된 김정은에게도 푸틴은 구세주
“한미일 맞선 북중러 정상회담 가능”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헤어나기 힘든 늪이 돼 가고 있다. 도움의 손길을 구하려 손을 내민 나라는 하필 궁핍에 시달리는 극동 변방의 북한이다. 재기를 노리는 제국에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라 해도,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다. 마침 오랜 라이벌이자 북한의 앙숙인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묶으며 역내 진용을 정비한 참이다. 러시아도, 북한도 ‘대항 동맹’을 꾸려야 할 시기를 맞은 셈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로 공개된 북러 정상회담 추진 배경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이르면 다음 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면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도 각종 분석과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무기 공급선 죄다 끊긴 러시아

회담 개최에 더 다급한 편은 무기 공급선이 끊긴 러시아였다. 미국 정부는 빈틈없는 봉쇄가 러시아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으로 판단한다. 미 안보 사령탑 격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북한 같은 나라에 전쟁 수행 역량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도 이날 “러시아가 전쟁에 동원할 무기를 찾으려 필사적으로 전 세계를 뒤지게 된 건 그들한테 필요한 물자를 구하기 어렵게 만든 미국의 제재와 수출 통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람 이매뉴얼 일본 주재 미국 대사는 미 CNN방송에 나와 이번 회동에 대해 “제재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해석도 비슷하다. 시드니 사일러 전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북한 같은 짝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러시아의 절박한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조금만 여유가 있었어도 인공위성·핵 추진 잠수함 등의 개발에 쓰이는 ‘첨단 기술’과 포탄 같은 ‘재래식 무기’를 맞바꾸는 불균형 거래가 이뤄지진 않았으리라는 뜻이다.


북은 핵·식량·위상·우방 ‘일석사조’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연회 도중 김정은(맨 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맨 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 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진이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하지만 김 국무위원장에게도 푸틴 대통령이 구세주인 건 마찬가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김정은이 푸틴을 만나야 할 이유도 많다”며 핵무기 기술 이전 외에, 김 위원장이 회담에 합의한 이유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식량이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국경을 닫은 뒤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식량 기근을 겪고 있다. 러시아가 도울 수 있다. 외교적 위상도 높아진다. 푸틴 대통령과 마주 앉는 것만큼 화려한 복귀도 드물다. 근래 확 끈끈해진 한미일에 맞설 만한 강력한 우방의 존재가 환기되는 것도 회동의 효과다.

특히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북한이 얻는 지정학적 이익이 만만찮다. 일단 불안감을 덜 수 있다. 아르템 루킨 러시아 극동연방대 교수는 WSJ에 “설령 핵을 가졌더라도 한미·미일 동맹에 북한이 얼마나 열세인지 김 위원장은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거꾸로 미국에 압력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겸 한국 석좌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및 인도태평양 안보 환경을 북러 협력이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서방 연대, 이란까지 품을까

서방 입장에서 더 큰 골칫거리는 북러 연대의 확장 가능성이다. 일차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한미일 3국 안보 공조 심화에 맞서는 북중러 3자 군사 협력 강화 움직임이 가시화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만수로프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5일 워싱턴타임스재단 주최 세미나에서 “미러·미중 관계가 현 궤도를 유지하면 향후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자 정상회담을 할 개연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이란까지 가세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회의론도 함께 존재한다. 폴리티코는 “4개국 모두 극도로 자율적이고 약해 보이기 싫어하는 만큼 기껏해야 서로 이해관계가 맞으면 잠깐 친구가 되곤 하는 사이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미 정부의 걱정은 ‘도미노 효과’다. 설리번 보좌관은 북한을 향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면) 국제사회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무기 공급의 물꼬가 트이지 않도록 “북한을 설득할 기회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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