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뒤집고, 뒷북치고…박정훈 대령 사태서 흐릿한 군인권위 존재감
채모 해병대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항명 혐의로 입건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위원회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군대 내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를 막고 ‘인권 친화적 병영문화’를 만들기 위해 신설된 군인권보호관이 이번 사태에선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군인권보호위원회는 국방부 검찰단의 박 대령 항명 혐의 수사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6일 전해졌다.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지난 4일 통화에서 “혐의가 있다 없다 미리 정해놓고 하는 수사도 아니고, 수사하는 것 자체를 하지 말도록 특별한 의견을 내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는 당초 박 대령에 대한 국방부 검찰단 수사를 ‘즉각 보류하라’던 입장과 달라진 것이다. 지난달 9일 군인권보호위는 성명에서 “(박 대령에 대한) 해병대의 보직해임 절차 진행과 집단항명죄, 직권남용죄 및 비밀누설죄 등에 대한 수사는 즉각 보류돼야 한다”고 밝혔다. 해병대 수사단 자료를 넘겨받은 경찰이 수사를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박 대령 등을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군인권위는 “수사 결론이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 군사법경찰 관계자의 보직을 해임하거나 직권남용죄 등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것은 군 수사기관의 독립성을 크게 저해할 우려가 있어 자제해야 한다”고 했었다.
군인권보호위는 자신들이 회의를 열지 못한 사이 ‘이미 징계처분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박 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을 기각하기도 했다. 군인권보호위는 군인권센터 등이 항명 혐의 수사 및 징계 중지 등을 담아 신청한 긴급구제 진정을 지난달 29일 기각했다. 이미 박 대령이 견책 징계처분을 받은 상태라 긴급구제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었다.
긴급구제 신청 접수부터 군인권보호위의 기각 결정까지 15일의 시간이 걸리는 동안 심의는 한 차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병가·외부일정 등으로 인한 불참, 인권위 위원들간의 갈등과 분쟁 등으로 심의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직후 군인권보호위가 개최한 ‘수사인권조정회의’도 무산됐다. 당일 오전 참가자들에게 통보해 오후에 열린 회의에는 박 대령 측은 물론, 국방부 검찰단 측도 참석하지 않았다. 수사하는 기관도, 수사를 받는 이도 군인권보호위의 소집을 ‘패싱’한 것이다. 김 보호관은 “수사인권조정회의에서는 군 검찰단에 ‘구속 수사를 꼭 해야 하나’, 박 대령 쪽에 ‘수사 불응 소리 나오는데 사실관계가 뭐냐’ 이런 걸 묻고 (양측 의견을) 절충하려 했었다”고 했다.
군인권보호위는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청에 넘긴 사건을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하게 된 경위 및 적절성 여부, 박 대령에 대한 항명죄 수사개시 경위 등을 조사하기 위한 직권 조사 개시를 결정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은 지난 4일 “결정 이후 특별히 조사 관련해 보고받은 게 없다”며 “조사기한을 정하진 않았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군인권보호위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 이예람 중사, 고 윤 일병 등 사망 군인 유족들은 전날 군인권보호위 소속 위원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김 보호관은 자신의 회의 불참을 ‘의도적 회피’라고 주장한 군인권센터를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터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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