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가습기살균제와 폐암 연관성 인정, 피해구제에 속도 내길

연합뉴스 2023. 9. 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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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습기살균제가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뒤 폐암으로 숨진 30대 남성의 피해를 인정하고 법적 구제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도입되면서 폐 섬유화와 천식 등의 폐 질환은 피해로 인정됐지만, 폐암은 예외였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 가운데 폐암 환자는 206명이고,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해당 질환자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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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의 유품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31일 서울역 앞 계단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2주기 캠페인 및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의 유품이 놓여있다. 2023.8.31 yatoya@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가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뒤 폐암으로 숨진 30대 남성의 피해를 인정하고 법적 구제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도입되면서 폐 섬유화와 천식 등의 폐 질환은 피해로 인정됐지만, 폐암은 예외였다. 가습기살균제가 폐암과 연관성이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다 이번에 정부의 판단이 달라진 데는 한 대학 병원이 진행한 연구 결과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선 가습기살균제 성분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인산염(PHMG)에 장기간 노출될수록 폐 악성종양 발생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정부가 이런 결과를 근거로 폐암을 구제 대상 질환에 올린 것이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신청자 가운데 폐암 환자는 206명이고,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해당 질환자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이 구제 판정을 받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에 폐암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면서도 구제 판정 과정에선 피해구제가 빨리 진행되는 신속 심사 대신 사례별 심사를 계속 적용하기로 했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뒤 폐암에 걸렸더라도 유전과 환경 등 다른 유발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나이가 어리고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 등 판정시 다툼의 여지가 별로 없는 피해자부터 구제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앞으로 수년간 판정을 기다려야 하고 흡연이나 고령을 이유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정부는 폐암 연관성을 두고 이중 잣대를 가진 것은 아닌지 법적 형평성을 따져보기 바란다. PHMG처럼 인체에 유해한 석면과 벤젠의 경우 해당 물질이 노출된 뒤 폐암에 걸렸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 산업재해 관련법에 따라 배,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발생한 지 1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의 원성은 그치지 않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 기업 간의 피해구제 협상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탓이다. 기업이 피해자와 배·보상에 합의하면 그 이후 발생하는 피해 책임은 면하는 '종국성'이 핵심 쟁점으로 거론된다. 피해자들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손해'도 국가가 책임지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법 개정을 요구하는 것도 또 다른 난관이다.

정부는 그간 가해 기업들로부터 분담금을 거둬 피해구제 비용을 충당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책임을 다한다고 볼 수 없다. 정부는 피해자와 기업 간 협상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등 분쟁을 조속히 매듭짓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객관적 연구 자료를 근거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질환 인정 기준도 구체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회도 본연의 기능인 사회 이해관계 조정에 힘을 보태야 한다. 국회 공청회를 열어 제대로 된 지원체계를 만들어달라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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