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韓작품 낙찰률 100%…해외 컬렉터 서울 사랑해"

크리스티 아태지역 CEO 프랜시스 벨린
"프리즈는 최고의 손님 모아
한국 중요한 시장으로 성장
미술 정상될 때 진정한 강국"
2천억대 바스키아·워홀 전시
7일까지 현대카드 스토리지

장미셸 바스키아의 '전사' 앞에 선 프랜시스 벨린. 크리스티

올해도 크리스티의 전시는 남달랐다. 작년 프리즈 위크 때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 2인전을 열어 '시각적 충격'을 선사했던 크리스티는 지난 5일 장미셸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의 걸작을 공개했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7일까지 열리는 전시 'Head's On'에 걸린 10여 점의 작품 가격만 2000억원이 넘는다. 특히 2021년 아시아 경매 서양 작품 중 최고가인 472억원에 낙찰된 바스키아의 '전사(Warrior)'를 비롯해 워홀 자화상 등이 관객을 만난다.

작년부터 한국에 파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크리스티의 프랜시스 벨린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사장(51)을 개막일인 지난 5일 만났다. 한국 전시를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2019년 김환기 '우주'가 신기록을 세웠고, 올해 3월에는 18세기 조선 달항아리가 60억원에 낙찰된 만큼 한국은 크리스티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의미가 있으면서 남들이 못하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워홀과 바스키아가 20~21세기 미술사에 미친 영향이 과소평가됐다. 두 사람 간 우정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며 "홍콩 전시를 가져온 작년과 달리 올해는 전 세계 컬렉터를 설득하는 노력 끝에 한국만을 위한 전시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벨린은 "홍콩부터 도쿄, 싱가포르, 서울까지 아시아 미술시장의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작년 프리즈 서울에 와보니 해외 컬렉터가 한국에 참 많이 방문하더라. 그들은 모두 서울을 사랑했다. 최고의 손님이 오는 것만으로 프리즈는 성공한 셈이다. 다만 그들이 다시 오는 게 중요하다. 방법은 우수한 콘텐츠뿐"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펀더멘털이 탄탄하다. 제조업 강국에서 K팝, 한류 등이 발전하면서 진화했다. 크리스티는 장기적으로 서울 미술시장이 탄탄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아트바젤 홍콩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규모가 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개선점은 필요하다. 벨린은 "서울과 한국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미술시장에서 정상까지 가려면 미술관과 갤러리 행사만으론 부족하다.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홍콩과 달리 한국은 시계, 명품 등 사치품에 세금을 부과해 경매시장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아시아는 미술시장의 '성장 엔진'이다. 2021년 아시아 지역 매출은 10억달러(약 1조3200억원)를 최초로 돌파했다. 크리스티 아시아는 내년 여름 홍콩 랜드마크인 더 앤더슨 타워의 신사옥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다. 상하이 웨스트번드를 비롯해 아시아 거점도 늘리고 있다. 사무실만 운영 중인 크리스티 한국의 확장 계획을 묻자, 그는 "고민 중이다. 크리스티가 한국에 진출한 지 30년이 됐고 적극적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며 "사무실과 갤러리를 어떻게 쓸지 고민이 필요해 아직 답을 내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작년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세계 경기가 급랭했다. 올해 상반기 크리스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하락해 32억달러(약 4조500억원)를 기록했다. 시장 회복 시기를 묻자, 그는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놀랍게도 아시아 시장은 침체가 없었다. 아시아 컬렉터의 구매는 역대 최고인 작년보다 겨우 5%만 줄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술시장이 침체한 것은 낮은 낙찰가를 우려한 컬렉터가 걸작을 내놓지 않는 '공급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벨린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미술시장의 큰손은 현금이 부족하지 않다. 불황에 채권과 부동산 투자를 쉬듯 단지 '기다림의 시간'일 뿐이다. 200억원짜리 피카소 작품을 굳이 팔아 현금을 만들 필요가 없다. 여전히 걸작 가격은 매우 높다"고 전했다.

올해 상반기 한국 경매시장은 매출이 44% 떨어질 만큼 침체가 극심했다. 동시대 미술 취향이 강한 한국 시장은 불황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아시아 내 다른 지역과 다른 한국 시장의 특징에 대해 그는 "즉각 반응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생생한 시장, 트렌드가 주도하고 이름값의 힘이 센 시장"이라며 "많이 성숙하고 개성이 좀 더 강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경매시장이 체력을 회복하려면 작품을 신중하게 선별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티 아시아는 낙찰률 90%를 지키고 있고, 올해 한국 작품은 낙찰률이 100%였다"고 조언했다.

벨린은 맥킨지앤드컴퍼니 출신으로 명품·소비재 분야에서 17년간 종사했으며 2016년 크리스티에 합류해 2019년 총괄사장에 올랐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