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 함평군에 ‘사업 폭탄’…“군 공항 달래기” vs “숙원사업 망라”
이례적 ‘특정지역만’을 위한 통큰 청사진 제시에 설왕설래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남도가 함평군에 서남권 판을 바꿀 대규모 사업 투자를 발표한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특정 지역에 몰아주기식 사업 발표가 매우 이례적인데다 오비이락 격으로 함평군의 '광주 군공항 유치 추진'과도 맞물리면서다.
이에 전남도가 광주 군 공항 유치에서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함평군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남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광주 군 공항 유치전에 뛰어든 함평군과의 엇박자를 해소하는 한편 '질서 있는 퇴각'을 위한 대 군민 설득 카드 제공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전남도는 이날 발표 사업과 광주 군 공항 문제를 연계하는 데 대해 선을 그었다. 이번에 포함된 대다수 함평군 제안 사업은 이미 현 군수 취임 전, '광주 군 공항 유치' 공식 선언 전부터 제안된 것으로 지역민의 숙원 사업을 망라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남도, '서남권 판 바꿀 함평 비전' 발표
김영록 전남지사는 이상익 함평군수와 함께 5일 전남도청 브리핑룸에서 2040년까지 6개 분야, 15개 사업에 총 1조7100억원 투자를 골자로 하는 '함평 미래 지역발전 비전' 담화문을 발표했다. 김 지사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함평 미래 지역발전 비전은 함평뿐만 아니라 전남도의 판을 바꾸는 대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머리를 맞대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주요 정책을 협의하고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전남도는 인공지능 융복합 축산밸리, 글로벌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빛그린 국가산단을 포괄하는 미래형 배후도시로서 일자리와 자족시설을 갖춘 '젊은이의 첨단도시'로 조성한다는 복안이다. 우선 도는 오는 2027년 함평으로 이전하는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와 연계해 2025년부터 2031년까지 손불·학교면 등에 5000억원 규모로 인공지능(AI) 첨단 축산업 융복합 밸리를 조성한다.
또 올해부터 2029년까지 2052억원을 투자해 함평만 해양관광 허브를, 2024년부터 2033년까지 1500억원을 들여 월야면에 글로벌 데이터센터를 각각 구축한다. 특히 오는 2040년까지 5000억원을 들여 월야면 인근에 1만여명 규모의 주거단지를 갖춘 '미래 융복합 첨단 신도시'를 조성한다.
이동 편의성과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사회간접자본(SOC)에 2024년부터 2035년까지 2280억원을 투자한다. 교통량이 지속해서 늘어나는 광역도로(광주 광산~함평 나산)를 비롯해 국도 23호선(신광~영광), 지방도 838호선(신광~해보) 확장 등을 국가·전남도 계획에 반영해 순차적 구축에 나선다.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200억원), 함평천 통합하천사업(498억원), 종합 레저·스포츠타운 조성(570억원) 등도 추진한다.
함평군의 광주 군공항 유치 '질서 있는 퇴각용'?
이례적인 전남도의 '특정지역만'을 위한 청사진이다. 이에 따라 전남도가 함평군에 광주 군공항 유치 포기 명분을 주기 위해 1조7000억원 규모의 발전 대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남도가 광주 군공항을 민간공항과 함께 무안으로 이전하려는데 반해 함평군이 광주 군공항을 함평으로 유치하려는 상황에서 발표된 데 따른 것이다.
전남도는 이날 사업 발표와 광주 군공항 문제를 연계하는 데 대해 선을 그었다. 인구 3만 명이 무너질 지역소멸 위기에 직면한 함평군이 그동안 제안한 지역발전 구상에 대해 전남도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종합적인 검토에 착수하면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영록 지사는 "대부분 함평군 제안사업은 이상익 군수 취임 전과 군공항 유치 공식 선언 전부터 제안된 것"이라며 "군공항 유치와 비전계획과는 연계할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함평군 주요 정책에 군공항 이전 문제도 포함될 수 있다"며 "전남도와 함평군이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으로 지역에 도움이 되고 주요 정책들을 협의하고 구체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중한' 함평군…실익 저울질
이날 발표장에 참석한 이상익 함평군수는 '실익을 따져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군수는 "전남도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협력해 무엇이 함평에 도움이 되는지를 군민들과 협의하겠다"며 "이날 발표가 선언에 그칠 게 아니라 꼼꼼히 챙겨 결실을 보기를 기대한다"고 들뜬 전남도와 달리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또한 군 공항 유치 추진 가능성도 여전히 열어뒀다. 이 군수는 "군수가 했던 얘기는 언제든지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저는 군민들의 실익을 추구하는 군수다"라며 "공항은 우리 군민들이 원한다면 한다. 군민들의 뜻이 중요하다. 광주 군공항 유치 여부는 군민들과 숙의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군수의 이 같은 발언은 전남도의 전폭적인 지원 계획에도 불구하고 광주 군 공항 유치를 공식 선언한 만큼 진퇴 여부 또한 군민들의 뜻에 따르겠다는 공복으로서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함평군은 광주 군 공항 유치 여부에 대한 군민 여론조사를 오는 12월에 실시할 예정이다.
전남도, 군 공항 '엇박자' 차단 의지
앞서 이 군수가 이끄는 함평군은 지난 5월 8일 '광주 군 공항' 유치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전남 도내 지자체 중 광주 군 공항 유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곳은 함평군이 처음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함평의 기습'이었다. 이를 두고 함평이 광주 군공항 이전에 종지부를 찍는 '게임 체인저'가 될지, 아니면 단순 들러리 내지 훼방꾼이 될지 주목을 받았다. 지역소멸의 위기로부터 함평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걸었다.
이 군수는 당시 발표한 담화문에서 "군 공항 이전사업을 통해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함평 발전의 대전환을 이룰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함평군 인구는 2013년 3만5610명에서 지난 4월 3만791명으로 줄어 '3만명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함평군의 독자적 행보는 광주 군 공항과 민간공항의 동시 무안 이전을 기정사실화하며 광주시를 압박하고 있는 전남도와 엇박자를 내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군 공항 이전을 반대하는 무안군과의 적전 분열로 광주시와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지자체간 갈등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광주 정치권 일부에서는 광주 군공항 이전에 대한 돌파구를 지역 유치전으로 보고 시·군 단위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재 광주시와 함평군은 지원방안 등을 협의 중이다. 지원 방안에는 KTX 함평역사 신축, 광주공무원교육원과 도시공사 함평 이전, 미래자동차산업단지에 기업도시 건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전남도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함평군의 광주 군 공항 유치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전남도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광주 군 공항 유치에 적극적인 함평군 일각에서 주장하는 '광주 군공항 받고 함평 편입', '함평에 군 공항과 민간공항의 패키지 이전' 등 함평 차원에서 다양한 변수들이 고려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앞서 전남도는 지난 4월, 광주 군공항 이전에 얽힌 첨예한 사안들의 우선순위를 정리한 바 있다. 광주 민간공항의 무안 이전이 우선되면 광주 군공항 문제에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함평군에서 주장하는 민간공항 이전도 국가계획에 따라 불가능하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날 전남도의 통 큰 함평사업 발표는 이 같은 의지를 선제적으로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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