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확인] 선진국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폐지하는 추세에 있다?
미국은 엄벌 목적으로 증가, 그러나 비판도 제기돼
유럽은 인권을 중시하는 경향성으로 폐지 추세
대법원이 법무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법무부의 개정안은 현행법상 무기형을 선고받은 흉악 범죄자도 20년 복역 후에는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는데, 헌법재판소의 사형 존폐 결정과 무관하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생각은 다르죠.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이 회신받은 의견서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개정안은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 새로운 형벌을 추가함으로써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대부분의 선진국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폐지하는 추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현재 각 기관의 주장이 다름에 따라 근거로 삼은 ‘대부분 선진국에서의 가석방 없는 종신형 존폐 추세’가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MBN 사실확인에서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은 종신형을 폐지하는 추세인지 확인해 봤습니다.
우선 현재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운용하는 선진국을 알아봤습니다. 선진국은 미국과 유럽평의회 국가 중 종신형 제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9개국을 제외한 38개국으로 설정했습니다.
미국은 2022년을 기준으로 알래스카주를 제외한 49개 주, 콜롬비아 특별구 및 연방법, 군사법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시행 중입니다. 미국의 연방정부 및 각 주는 사형제 존폐와 별도로 종신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종신형이 존재하는 유럽평의회 소속 국가들은 종신형에 대한 가석방의 기준과 최저복역기간에 있어 국가별 차이는 있으나 총 34개국이 가석방 허용 형태를 보입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시행하는 15개국 중 11개국은 가석방 있는 종신형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병존하며, 4개국만이(네덜란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몰타) 가석방 없는 종신형만을 운용합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제외한 모든 주가, 유럽평의회 국가는 절반 가까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운용하고 있는 걸 보면, 선뜻 폐지 추세라고 단정 짓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국가의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한 서로 다른 정서와 구체적인 가석방 요건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한 수요는 증가세를 보입니다. 전체 가석방 인원 중 가석방 가능 종신형 수형자는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의 두 배에 달합니다. 그러나 증가의 면에서는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의 추세가 가파른데요. 지난 2003년~2016년 사이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은 59.05%, 가석방 가능 종신형은 17.8% 증가했습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인원이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미국은 엄벌주의와 교정주의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들 중 절반 이상이 사형을 존치하며, 폐지 국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대안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아주 예외적인 형법 체계도 운용된다. 주로 형이 높고 교정시설이 열악함에도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시행하는 있는 것”이라며 “따라서 미국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폐지 추세라고 하기 모호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역시도 범죄 예방 효과 부분에서 전문가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권지혜 수원대학교 형법학 교수는 “거의 모든 미국의 주들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시행하고 있지만, 범죄 억제력이 떨어지고 교정 비용만 키운다는 반박도 제기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강력 범죄일수록 범죄예방은 형벌의 중함보다는 적벌 위험 및 처벌 위험의 정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제 유럽평의회 소속 국가들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유럽의 경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운용하고 있는 국가들은 유럽인권재판소에 의해 감형이 되거나 가석방 있는 종신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있는데요. 독일은 1949년 사형을 폐지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했으나, 1981년에 이르러 형법 개정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대신 가석방이 허용되는 종신형을 도입했습니다. 1977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종신형을 선고 받은 자도 근본적으로 다시금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오히려 종신형의 집행을 중지하는 전제조건을 세우고 그 절차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임무”라고 판시했습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13년 7월 9일 감형이 금지되는 영국의 종신형이 유럽인권보호협약 제3조(비인도적인 또는 품위를 손상시키는 취급 금지)를 위반해 수형자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영국 법원은 해당 판결에 반대했으나, 이후 종신복역명령 수형자에 대해서도 형식적으로는 형을 재검토할 기회를 마련하며, 종신형 수형자들에게도 5~10년에 1회, 가석방위원회에서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편 제14회 국제연합 범죄방지형사법회의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폐지를 주문했습니다. 부과하더라도 그것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이거나 ‘가장 심각한 범죄’에 대해서만 사용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종합해보면 ‘선진국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폐지하는 추세에 있다’는 대체로 사실입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상이한 형법 체계를 가져 구체적인 운용 방식이 다르지만, 대체로 폐지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다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많이 사용되는 미국에서조차도 반론이 있는만큼 우리나라의 법 개정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정예림 인턴기자 chloej575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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