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총리직 복귀 여부에 나토가 떨고 있다···과연 누구?[시스루 피플]
우크라 적극 지원하던 외교정책 뒤집힐 가능성
로베르트 피초 전 슬로바키아 총리(59)의 총리직 복귀 가능성이 커지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떨고 있다. 오는 30일(현지시간) 열릴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피초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 포퓰리스트 성향 사회민주당(Smer-SD)이 줄곧 우세를 유지하며 승리가 유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피초 전 총리는 세 차례나 총리를 지낸 친러시아 성향 정치인으로, 그가 집권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나토 회원국 중 하나로 꼽히는 슬로바키아의 외교 정책이 급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슬로바키아는 에두아르트 헤게르 총리가 이끌던 4개 정당의 연정이 지난해 12월 의회 불신임 투표로 붕괴하면서 오는 30일 조기 총선을 치른다. 헤게르 총리는 과도정부를 이끌다 지난 5월 초 사퇴했다.
피초 전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mer-SD)은 지난 3월 1위로 올라선 후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사회민주당 지지율은 20%로, 2위인 진보적 슬로바키아(PS)를 4% 포인트 차이로 앞서고 있다.
영국 언론인 존 캠프너는 5일 가디언 칼럼에서 “여론조사가 정확하다면 모스크바를 찬양하고 극우 정치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모델로 삼는 로베르트 피초가 복귀한다는 뜻”이라면서 “유럽연합(EU)과 나토가 곧 새로운 골칫거리를 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캠프너는 이어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슬로바키아는 나토 회원국 중 최초로 전투기를 지원하는 등 우크라이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중 하나였다”면서 “피초가 집권하면 180도로 달라지면서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지할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도 지난 7월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친러 후보가 집권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흔들릴 수 있다”면서 “서방은 슬로바키아 선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피초 전 총리는 2006~2010년, 2012~2018년 모두 세 차례 총리직을 수행했으나 2018년 3월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사퇴한 인물이다.
2018년 2월 슬로바키아에서는 정치권 인사들의 이탈리아 마피아 연루설을 취재하던 기자가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피초 총리의 고문이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피초는 그해 3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포린폴리시는 총리 재임 시절 일부 친러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친서방 입장을 유지했던 피코 전 총리가 2018년 물러난 뒤 반서방으로 확실하게 돌아섰다고 지적했다. 피코 전 총리는 2018년 자신의 퇴진 요구 시위에 서방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초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분쟁이므로 슬로바키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을 두고 ‘자살 임무’라고 비난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을 ‘파시스트’라고 지칭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하는 현 슬로바키아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미국의 하수인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프랑스 공영 라디오 RFI는 피초 전 총리의 이 같은 ‘겁주기 전술’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슬로바키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주도했던 야로슬라우 나트 전 국방장관은 피초 전 총리와 사회민주당을 두고 “러시아가 보낸 트로이의 목마”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경제난에 집권 연정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피초 전 총리의 극단적인 주장이 슬로바키아인들에게 파고드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1993년 체코와 분리된 슬로바키아는 냉전 시기 공산권이었던 중·동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친러 정서가 많이 남아 있는 국가로 꼽힌다. 슬로바키아 싱크탱크 글로브섹이 지난 5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슬로바키아 국민의 50%는 미국이 안보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된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비중은 4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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