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주권 행사하면 무정부 상태”라는 통일부 장관에…학자들 “상식 이하의 발언”
네티즌들 “헌법 부정하는 장관 파면해야”
일각선 “대의제 언급···소모적 정쟁 자제”
“국민 5000만명이 모두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한다면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 발언의 후폭풍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전형적인 봉건주의적 사고방식”, “장관이 할 수 없는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구 트위터)에서는 6일 오후 3시 기준 ‘무정부 상태’ ‘헌법 1조’ ‘통일부 장관’ 등의 단어가 그 시각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 목록인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특히 무정부 상태는 3000회 이상 언급되면서 이날 오전부터 상위권을 차지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김 장관의 발언이 담긴 기사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2항을 언급하며 “헌법 가치를 부정하는 김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누리꾼은 “이런 장관이 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무정부 상태를 인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헌법·정치학자 등 전문가들도 “김 장관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 장관의 발언을 두고 “형식적 국민주권의 논리”라며 “유신헌법 시대에 나왔던 교과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독일에선 이미 80년 전에 깨진 논리로, 한국에서도 87년 체제를 기점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사라졌다”며 “헌법재판소에서도 1989년에 대의제를 실질적 국민주권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는데 (장관이) 구시대 유물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루소가 대의제를 비판할 때 ‘투표할 때만 주인이 되고, 선거만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라고 했는데 그것과 (장관의 발언이) 무엇이 다르냐”고 덧붙였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념을 떠나 반헌법적 얘기”라며 “장관의 발언은 헌법 1조를 왜곡한 것으로, 민주주의에 전면으로 반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권 행사자라는 의미로, 다만 5000만명이 모두 주권을 행사하기 어려우니 대의제를 절차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모두가 주권을 행사하면 무정부 상태가 된다는 건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고 했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장관은 ‘대한민국은 국민 주권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에게 위임되는 대의정치제’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실언을 한 것”이라며 “정치적 지식과 개념 부족 때문에 마치 주권자로서의 국민 권한을 무시하는 것처럼 발언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정치학자도 “장관이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며 “대의제 정부를 얘기하고 싶은 건데, 하필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있는 국회에서 그런 소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김 장관 발언을 둘러산 소모적 논쟁은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인호 중앙대 헌법학과 교수는 “주권자인 국민이 매번 국민투표로 법을 정하고 행정권한·사법권한을 직접 행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장관이) 대의제 필요성을 원론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들린다”고 했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장관이 실언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 공세로 가는 것은 과잉”이라며 “실언과 오판, 무지에 대한 비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최창렬 교수도 “상식 이하의 발언 탓에 여야가 민생과 관련 없는 얘기를 두고 소모적 정쟁을 벌이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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