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유학, 인국공, 타워팰리스”… 30대男 거짓말에 속아 8억원 뜯긴 사연

김명진 기자 2023. 9. 6. 16: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집은 강남 타워팰리스에요. 학교요? 영국에서 공부했어요.”

A씨는 2019년 2월 소개팅 앱에서 B(36)씨와 처음 만났다. 자기가 영국 유학파라고 밝힌 B씨. 자기를 서울 강남에 살고 있다고 소개하는가 하면,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경영관리 업무를 담당한다고도 했다.

탄탄한 직장과 재력을 자랑하는 B씨에게 A씨는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B씨는 자기 계좌에 300억원의 현금이 예치돼 있다면서 통장 이미지 파일도 보여줬다. B씨와 나누는 채팅과 전화 통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둘은 사귀는 사이가 됐다.

교제 한 달 뒤부터 B씨의 ‘부탁’이 시작됐다. 그해 3월 7일 B씨는 “지갑을 잃어버려서 사채를 잠깐 썼는데, 원금과 연체이자가 5100만원이 됐다”며 “우선 1000만원을 보내면 내용증명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니, 1000만원만 대신 갚아주면 나중에 한꺼번에 갚겠다”고 했다.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돈을 부쳤다.

그 뒤로도 갖은 명목으로 돈을 빌려달라는 B씨 요구가 이어졌다. ‘친구 카페 인테리어’ ‘예치금 반환’ ‘주택담보대출 상환’ ‘친구 자동차 대출 상환’ ‘친구 신용대출 상환’ 등의 구실을 댔다. 빌려간 돈은 점차 불어나 5억원을 넘어가기 시작했지만 A씨는 계속해서 돈을 빌려줬다.

같은 해 8월에는 B씨가 돈을 다 갚을 방법이 있다며 이런 요구도 했다. “인천공항공사 임원에게만 혜택을 주는 연금 상품에 가입해 뒀는데, 이 연금을 받아서 지금까지 빌린 돈을 한꺼번에 갚겠다. 다만 최초 설정금액을 8억원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부족한 2억7800만원을 채우면 2~3시간 뒤에 심사 후 바로 연금을 받아서 빌린 돈을 전부 갚겠다.”

A씨는 이 말에도 속아 돈 2억원을 B씨의 농협 계좌에 부쳤다. 그런데 B씨는 이 돈을 받고서도 “말했던 연금이 만기 수령이 아니라 해지 수령이다 보니 이자를 납부해야 한다”며 2억8100만원을 또 보내달라고 했다. A씨는 이 말에 집을 팔아 돈을 빌려줬다. 이렇게 A씨는 29차례에 걸쳐 8억8321만원을 B씨에게 뜯겼다. A씨는 뒤늦게서야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수사기관 조사 결과 인천공항공사 직원이라던 B씨는 별다른 고정 수입 없이 사실상 ‘무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산도 전무했다. 자랑했던 ‘300억원 통장’은 이미지 파일을 조작한 것이었다. 돈을 빌리며 댔던 사정도 대개가 거짓이었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A씨에게서 돈을 뜯기 위해 수개월 동안 거짓말한 것이다.

재판부는 B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직업, 재력 등에 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기망하고 상당한 기간 반복적으로 금전을 편취했다”며 “이 과정에서 마치 계좌에 300억원이 예치된 것처럼 통장 이미지 파일을 조작해 이용하기도 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해액 규모가 8억8000만 원이 넘는 거액임에도 피해액 중 1000만원만 반환돼 대부분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며 “사회초년생인 피해자는 거의 전 재산을 상실하고, 피고인에게 주기 위해 금전을 차용한 지인들의 채무 독촉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