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현장 엔지니어의 '촉'…한국 제조업 심장을 지켰다 [손현덕의 사람과 현장]
1년 전. 2022년 9월 6일 새벽 그는 비상근무 중이었다. 포항과 광양제철소 현장 총책임자인 이시우 포스코 생산기술본부장은 하루 전인 9월 5일 오후 5시부터 전 간부 196명에게 자신들의 직책을 수행하는 곳에서 정위치하라고 지시했다. 포항에 103명. 광양에 86명. 그리고 생산기술본부 7명. 본인도 포항 본사 11층에 위치한 그의 집무실에서 철야근무에 들어갔다. 창문 커튼을 젖히면 정문에 걸린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고 쓰인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어록이 보인다. 그 뒤로 직선으로 쭉 뻗은 왕복 4차로의 중앙로. 영일만까지 2㎞를 달린다. 왼쪽으로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고로와 제선공장, 쇳물에서 탄소를 제거해 강(鋼)을 만드는 제강공장이 있다. 오른쪽은 시뻘겋게 달궈진 철강을 컨베이어 벨트로 이동시키면서 물을 뿌려 식히고 롤러로 눌러대면서 제품을 생산하는 압연공장이 있다. 여의도 3배나 되는 937만㎡(약 284만평)의 거대한 제철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간부 전원에게 비상대기를 시킨 이유는 태풍 '힌남노'였다. 라오스어로 '돌가시나무'라는 뜻을 지닌 이 태풍은 일주일 전인 8월 28일만 해도 별 볼 일 없었다. 일본 동남부 먼바다에서 발생해 그냥 서쪽으로 가다가 소멸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연결된 거대한 기단을 뚫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나 이변은 언제든 일어나는 법. 대만을 향해 남서진하던 힌남노는 뜨거워진 태평양 해수면의 에너지를 공급받으면서 갑자기 띠처럼 연결된 고기압 기단을 뚫고 90도로 몸을 틀어 방향을 북으로 바꿨다. 그게 8월 31일. 힌남노가 괴물로 재탄생하자 기상청은 태풍 경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9월 5일 '초강력' 수준으로 제주도 남해안을 지나 부산을 거쳐 가고 다음 날인 6일엔 경남 통영에 상륙해 영남 지역을 강타하고 포항 근처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예보.
4일 일요일 밤 11시부터는 비가 멈췄다. 2일부터 내리던 비는 점차 잦아들더니 4일 강수량은 고작 14㎜. 5일 월요일에는 예정대로 김학동 부회장 주재로 12층 영상회의실에서 본부장급 회의가 열렸다. 일상적 업무보고가 이어진 뒤 김 부회장은 회장의 지시사항과 본인의 당부를 전했다. 1시간 전쯤인 오전 7시 45분 최정우 회장은 김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태풍에 따른 비상대응을 주문한 터였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제철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선강(제선과 제강)에서 시작해 포항과 광양제철소장까지 역임한 누구보다도 현장을 꿰뚫고 있는 카리스마. 작은 키이지만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사각형 얼굴. 그래서 별명이 작은 거인. 그는 이 본부장에게 고로 휴풍을 검토하라고 이미 지시를 내려놓았다. 울산 학성고와 한양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김 부회장보다 1년 뒤인 1985년 포항종합제철에 입사해 냉연공장에서 시작해 쇳물과 함께한 전형적 엔지니어. 그렇게 현장에서 쇠를 만지다가 부사장(현재는 사장)까지 올라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고로 휴풍 검토에 내심 공감했다. 고로 휴풍이란 용광로의 운행 정지. 철강맨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뼛속까지 안다. 그 두 사람에겐 태풍으로 제철소 전체에 전기가 끊기는 사태, 즉 전정전(全停電)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있었다.
쇳물은 1500도 정도 되지만 이를 만드는 고로는 내부 온도가 2300도까지 올라간다. 고로를 보호하기 위한 냉각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냉각장치는 그 안에 있는 냉각수가 순환되면서 고로가 과열되는 걸 방지한다. 냉각수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펌프가 필요하고 펌프는 전기로 돌아간다. 전기가 끊겨 펌프가 작동되지 않으면 고로는 냉각수 없이 고온을 견뎌야 한다. 한계시간은 최장 30~40분. 그다음은 '꽝' 하고 폭발이다.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다.
그다음 리스크는 송풍이 안 되는 사태.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듯 고로는 송풍구로 바람을 불어넣어 쇠를 녹인다. 송풍구로 바람이 안 들어가면 위에서 내려오는 철광석(iron ore)과 코크스(cokes)가 녹지 않은 채로 퉁 떨어진다. 그러면 마치 작은 대야에 어린아이가 들어가면 물이 첨벙 넘치듯 쇳물이 밖으로 나온다. 나올 수 있는 구멍은 송풍구밖에 없다. 그걸 막아버리면 고로 안 쇠는 쇳물(액체)이 아니라 고체로 굳는다. 그걸 전문용어로 냉입(冷入)이라고 한다.
일반인은 용광로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조차 못한다. 110m, 아파트 40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원통형 설비다. 그 안을 들여다볼 수도 한 번 불을 붙이면 끌 수도 없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노랫말을 쓴 포스코의 사가(社歌)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끓어라 용광로여 조국 근대화 /줄기차게 밀어가는 장엄한 심장." 그렇다. 용광로는 제철소의 심장이다. 그 심장이 터지거나 굳는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심장을 정지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멀쩡한 고로를 세우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포항이 하루 4만t, 광양이 6만t, 그래서 하루 10만t 철강 생산. 당시 시세를 따지면 1t에 대략 100만원. 그러니까 하루 매출 손실 1000억원이다. 그러나 그건 며칠 견디고 복원하면 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 본부장은 말한다. "그건 철강인의 자존심입니다. 고로를 책임지는 사람이 그걸 세워야겠다고 한다는 자체가 용납이 안 됩니다. 포스코에서 쇳물을 뽑아낸 지 50년 동안 그래본 적도 없고요. 태풍이 와도 250번은 왔을 겁니다. 그러나 자존심만으로 되나요.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이번 태풍은 다르다고."
이 본부장은 김 부회장이 주재한 월요회의 직후 뭔가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직감했다. 이왕 대비를 하려면 철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고로 휴풍 검토는 확실한 실행으로, 추가로 전 라인 조업 중단까지. 이 본부장 스스로 "그때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뭔가 귀신에 씐 것 같다"고만 한다. 전 라인 조업 중단이란 결정은 사실 이렇게 우연스럽게 내려졌다. "엄청난 놈이 내일 온다고?" 태풍 전야라는 게 이런 건가. 오히려 비가 그친 게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머릿속에 또렷하게 새겨진 두 개의 기억을 소환했다.
하나는 태풍 사라. 호적상 1960년생이지만 실제론 1959년에 태어난 이시우. 그해 9월 역대급이라는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사망·실종자 849명, 이재민 37만3459명을 발생시킨 특급재해. 그때 이시우의 모친은 울진군 근남면에 있는 성류굴 근처에 살았다. 그 앞에 왕피천이라는 큰 개천이 흐르는데 태풍이 오자 그 하천이 범람해 마을이 온통 물에 잠겼다. 어머니는 만삭인 몸을 이끌고 죽을 힘을 다해 산으로 피신했다. "너는 태풍 때문에 태어나지 못할 뻔했어." 자라나면서 이시우는 몇 차례나 그 말을 모친에게 들었다.
두 번째 기억은 광양제철소장으로 있던 2019년 7월 1일에 생긴 일. 잊을 수 없는 시간. 미국의 9·11테러와 같은 오전 9시 11분. 제철소에 그 끔찍한 전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복구하는 데 걸린 시간은 33시간. 그에겐 악몽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중요한 사실은 그 결정을 지금 해야 한다는 점. 육중한 용광로를 세운다는 것이 스위치를 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도 일단 곡기를 끊듯 투입되는 원료의 양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송풍 차단. 그게 휴풍이다. 용광로에는 철광석과 코크스가 가득 차 있다. 통상 그 비율이 5.0, 철광석 5에 코크스 1. 이 동네 용어로 '오어 바이 코크스(ore by cokes)'. 그런데 휴풍을 하려면 이 비율을 낮춰야 한다. 그게 감광이다. 철광석 절대량을 줄이기도 하거니와 비율도 떨어뜨려야 한다. 용광로 꼭대기로 코크스를 훨씬 더 쏟아부어야 하는데 비율을 3.0, 2.0 이런 식으로 낮춘다. 중단했다가 다시 가동하려면 송풍구로 바람을 넣어 불을 때야 하는데 그때 열을 확보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코크스는 열 소스다.
이 본부장이 고로를 세운 시간은 6일 새벽 2시 52분. 수마가 덮치기 꼭 3시간 전이다. 휴풍 결정을 하게 된 건 12시간 전쯤이다. 오전에 본부장회의를 마치고 나니 거의 12시. 점심시간이 다 됐다. 그는 곧바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오후 2시였다. 이백희 포항제철소장, 이진수 광양제철소장 등 총 65명의 공장 간부가 영상회의실로 모였다. 거기에서 중대 결정이 내려진다.
"첫째, 포항과 광양 5개 고로 휴풍. 둘째, 전로 출강 중단(바가지 같은 래들이나 잠수함 같은 토페도에 쇳물을 싣고 다음 공정으로 옮기지 말라는 의미). 쇳물이 밖으로 나가면 화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셋째, 전 압연 라인 가동 중단. 모터가 타고 공장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넷째, 전 간부 비상대기 전 직원 이동 금지. 다섯째, 제철소 내 저지대 지역 전면 출입통제. 여섯째, 식당 조식 중단. 협력업체에 도시락 제공."
회의 내용을 정리해 서울에 있던 김 부회장에게 이메일 보고를 했다. 그게 저녁 5시쯤. 메일을 바로 확인한 김 부회장이 답장했다. "현장에서 그렇게 결정했으면 실행하라. 그러나 위중한 사항이니 회장에게 보고하라."
저녁 7시 50분이었다. '회장님께, 태풍 힌남노 관련 제철소 대응 계획을 보고합니다'로 시작하는 823자(字)짜리 메일이 발송된다. 5분이 채 안 돼 '읽음' 사인이 들어왔다. 그 뒤의 조치는 군사작전 펼치듯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본부장의 증언. "읽고 나서 전화나 답신은 없었습니다. 그건 현장 책임자가 알아서 하라는 뜻입니다. 군말이 필요 없습니다. 액션입니다. 그게 현장의 결정을 존중하는 포스코의 기업 문화입니다. 엔지니어가 제일 잘 압니다. 따로 전화 보고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결정도 포스코에선 이렇게 진행됩니다."
"만약 회장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려고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드는 건 아니고 어떻게든 제가 설득했을 것"이라며 "우리 회사는 그런 게 된다"고 말한다.
비상대기 중인 이 본부장은 6일 0시부터 창문 밖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거세지기 시작한 빗줄기를 보았다. 그리고 고로가 멈춘 직후인 새벽 3시께부터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루 342㎜나 되는 기록적 폭우. 500년 만에 한 번 내릴까 말까 한 비였다. 그게 거의 4시간 내에 집중됐다. 그래도 공장은 무사했다. 새벽 5시 40분쯤. "이렇게 지나가는가 보네"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그 앞에 영화처럼 거대한 물기둥이 들이닥쳤다. 그 누구의 머릿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냉천이 범람해 포스코의 가장 낮은 남동쪽 3문을 부수고 공장을 덮쳤다. 여의도 전체를 2.1m의 높이로 채울 수 있는 620만t의 흙탕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포스코는 그렇게 잠겼다. 순식간에.
"나중에 알았습니다. 남쪽 운제산 오어지가 넘치기 시작한 시각이 새벽 4시께.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지요. 넘치는 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급류로 변해 펜션을 무너뜨리고 지역 아파트를 치고 온갖 잡동사니를 끌고 내려왔습니다.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다리 냉천교까지. 길이 125m로 길지 않은 다리이지만 그것을 받치는 교각이 5개이고 교각 간 거리는 17m에 불과합니다. 이 교각에 나무기둥이며 냉장고 같은 세간살이가 걸렸습니다. 교각은 댐이 됐고 물길이 방향을 틀어 포스코를 친 것이지요. 그다음엔 우리가 다 아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수마가 덮친 그 순간 김 부회장은 인천 송도에서 거행 예정인 포스코그룹 신입사원 수료식에 참석하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강남 일원동 자택을 나섰다. 집을 떠나기 전 전화를 걸어보니 포항은 무사했다. 아주 잠깐의 안도. 차가 인천 방향 경인고속도로에 진입할 때쯤 포항 현지에서 긴급 전화를 받았다. 불이 났다는 거였다. "차 돌리자. 포항으로 간다." 기사에게 지시한 뒤 심호흡을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포항에 연락을 취했으나 그때는 이미 통신 두절. 그는 직감했다. "이건 화재가 아니다. 코크스 오븐 폭발 방지를 위해 가스가 방산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걱정은 그게 아니었다. '물'이었다"고.
김 부회장이 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쯤. 공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열연공장 쪽은 지하 20m 전기 유압실을 모두 채우고 지상으로도 어른 키 높이만큼이나 물이 차올랐다. 접근이 불가능했다. "사망이나 실종된 사람 있어?" "없습니다"라는 대답. "그런데 만약 고로를 세우지 않고 전원을 내리지 않았다면…." 김 부회장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상상할 수 없는 지옥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건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가 9개월 전 매일경제에 쓴 대로 영원한 공장 폐쇄요, 한국 산업의 파산이었다. 신(神)의 한 수가 포스코를 살리고 대한민국 제조업을 살렸다. 그리고 한국 경제를 살렸다.
비는 멈추고 밤새 포스코를 짓누르던 먹구름은 어느새 걷혔다. 하얗게 변하는 구름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참으로 야속한 날씨다. <시리즈 끝>
사람과 현장은…
머리보다는 가슴, 가슴보다는 발로 쓰는 글을 좋아한다. 경제기사가 따분한 이유는 발로 쓰지 않고 머리로 써서 그렇다. 발품을 팔아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니다 보면 글이 나온다.
[손현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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