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판정 뒤집겠다는 법무부...법조계 “절차 위반에 기대 걸어야”
중재 재판부 “韓, 론스타에 2880억+이자 지급”
정부, 취소 신청했지만 인용률 10~20% 불과
전문가 “증거 관련 변론권 박탈 입증 해야”
취소 사유 일반론 그친다는 의견도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에 2억1650만달러(약 2880억원)와 이자를 지급하라.”
작년 7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내린 중재 판정에 대해 법무부가 지난달 31일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이번 판정에 법리상 문제점이 존재하므로 판정을 취소시켜 배상금 원금과 이자 지급 의무까지 전부 소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해볼 만하다는 입장이지만 중재 판정부가 취소 신청을 인용한 경우는 10건 중 1~2건에 불과하다. 법조계에선 인용되려면 판정부가 우리 정부의 변론권, 반대신문권을 박탈하는 등 심각한 절차 위반을 저질렀으며 추측 근거만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산 뒤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매각했다. 그런데 매각한 그해 ICSID에 국제투자분쟁(ISDS)을 제기했다. 한국 금융당국이 매각 승인을 늦게 해줘서 손해를 봤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46억8000만달러(약 6조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론스타는 2010년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금융위원회가 1년여간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외환은행 주가가 하락하며 매각가를 재협상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가조작으로 재판 중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입장이다.
중재 판정부가 작년 공개한 판결문을 보면 쟁점은 ‘금융위원회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고의로 늦췄는지’다. 판정부 다수 위원은 금융위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다른 인수합병(M&A) 건과 마찬가지로 공정하고 신속하게 검토해야 하는 법적 권한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시 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부당한 이익을 너무 많이 챙기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만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에는 론스타의 주가조작 사태도 영향을 미쳤다고 중재 판정부는 판단했다. 매각이 늦어진 것에 대한 책임이 론스타에도 있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론스타가 요구한 배상액의 4.6%만 인정했다.
◇ 취소 인용률 10~20%대... “‘절차 위반’ 입증하면 승산”
법무부는 지난달 취소 신청 제기 사유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판정부가 금융위의 구체적인 위법행위를 특정하지 않는 등 ICSID 협약과 국제법에 반하는 판단을 했고(월권) ▲주요 증거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변론권, 반대신문권을 박탈하는 등 기본적인 절차를 위반했으며 ▲론스타가 외환은행 투자·수익 실현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가졌다면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등 이유를 기재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선례를 토대로 따져보면 법무부의 취소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오현석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에 따르면 2020년 말까지 ICSID에 제기된 중재 판정 취소 신청은 165건. 이 중 전부 혹은 일부가 취소된 건은 19건(11.5%)에 불과하다. 중도 철회되거나 절차가 중단된 사건을 제외해도 21.6%에 그친다.
국제 중재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시한 취소 사유 가운데 ‘기본적인 절차 위반’을 충분히 입증할 경우 인용될 여지가 있다고 봤다. 우리 정부는 중재 판정부가 론스타 측이 제출한 국제상업회의소(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증거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 변론권과 반대신문권을 박탈했다고 주장할 방침이다.
이 판정문에는 “당시 하나금융이 금융위에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받는 대가로 가격을 인하하도록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 우리 정부에 불리한 서류를 증거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오 교수는 “변론권 박탈 등이 중재 판정에 중대한 영향을 줬을 경우 (취소 사유로)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안정혜 국제중재대응팀장(변호사)도 “절차적 규정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 인정된 사례들이 존재한다”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필리핀 정부 사이에 있었던 취소 신청 사례를 보면 (취소위원회가) 당사자가 변론할 권리를 침해함으로서 절차 규정을 중대하게 위반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또 중재 판정부가 소수 의견으로 “추측성 증거, 전문증거만으로 국제법 위반 행위로 인한 정부 책임을 인정한 판정례가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는 점도 우리 정부에는 희망적이다. 오 교수는 이 대목을 두고 “다른 사유에 비해 취소위원회의 인용 가능성이 다소 높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법무부가 제시한 취소 사유가 일반론에 그쳐, 취소 신청이 인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중재인으로 활동한 곽경직 법무법인 KNC 대표변호사는 “(정부가 주장한 내용 중에)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게 없다”며 “이유를 불기재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판정문을 보면 이유는 나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국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약을 왜 이렇게 많이 체결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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