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RNA 플랫폼 시작도 못했는데 예산 81% 깎았다…예산 도둑 잡겠다고 ‘백신 주권’ 포기했나

김명지 기자 2023. 9. 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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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글로벌백신기술사업단 3개 사업
R&D 예산 비효율 대표 사례로 국회 보고
3개 사업 1개로 통폐합
총 예산 277억, 51억으로 5분의 1토막
“내년 사업 조기 종료하게 될 것”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었던 2022년 4월 2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국내 첫 코로나19 백신 개발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일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백신과 치료제 확보에 실패한 대표 과학 선도국으로 손꼽힌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 자국 의학 바이오산업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앞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하면 100일 내 백신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약 10조5660억원을 ‘100일 백신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하기로 하고, 2년 만에 메신저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냈다. 미국과 영국도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지만 다음 번 감염병 사태에 대비해 100일내 백신을 확보하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코로나19 사태의 교훈을 뼈저리게 교훈을 얻은 과학 선도국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정부 연구개발(R&D) 카르텔을 깨겠다며 시작한 예산 삭감 과정에서 백신 주권 확보와는 먼 쪽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기 대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국산 백신 기술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목적으로 출범한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내년 예산이 5분의 4 넘게 대폭 깎였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보급된 신 기술인 mRNA백신 연구개발 지원 사업은 예산 부족으로 올해로 종료될 예정이다. 10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mRNA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R&D정책이 초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전날(5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2024년 R&D 예산 비효율 조정 예시’ 보고서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의 ‘글로벌백신기술사업단’이 추진하는 ‘미래성장 고부가가치 백신 개발’, ‘백신 기반 기술개발’, ‘신속범용백신기술개발’ 사업 예산이 올해 277억 1100만원에서 내년 51억 900만원으로 깎였다.

이들 사업은 올해 각각 89억 8700만원, 103억 5000만원, 83억 7400만원의 예산을 받았으나, 내년부터는 ‘글로벌 백신기술선도사업’으로 통폐합돼 하나의 사업으로 예산을 받는다. 과기부는 “올해5월 감염병 사업군의 특정 평가를 한 결과, 3개 세부 사업 모두 유사중복 가능성이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 세 사업이 명칭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사업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글로벌백신기술사업단은 지난 2022년 1월 국내 백신 기술 주권 확보를 내걸고 출범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백신 개발 기술이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당시 형성됐고, 정부는 비임상 백신 연구에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우정택 경희대의대 내분비내과 교수가 사업단 단장을 맡아, 최초 3년 1단계, 다음 2년 2단계로 총 5개년 계획로 지원하는 세웠다. 그런데 출범 3년차에 해당하는 내년 예산이 대폭 깎이면서, 2단계 사업 진입은 물론 1단계 사업에서 지원하던 연구 과제들도 조기에 종료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사업단은 3개 사업이 모두 코로나19 백신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R&D 비효율 사례로 지목된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유행하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하나의 사업에 대규모 예산을 한꺼번에 투입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여러 사업으로 쪼개서 빠르게 지원하는 식으로 R&D 사업을 기획했다가 이번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별개의 사업이라도 하나의 사업단 아래에 두고 운영하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중복 사례로 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신을 비롯한 신약 기술 개발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이번 백신 기술 개발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을 두고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신약 개발 기초 연구에 크게 뒤처진다. 일례로 미국과 독일 일본은 mRNA 기반의 백신 개발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아직 mRNA플랫폼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 유럽, 일본 정부는mRNA 플랫폼 확보에만 천문학적인 투자를 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가장 앞서 백신 기술을 확보한 미국은 10년 이상 연구개발에 투자해 확보한 mRNA 플랫폼으로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일본 역시 코로나19 사태 때 대응이 늦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mRNA 기술을 확보해 다음 감염병 때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본 다이이찌산쿄(第一三共)는 우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끝까지 붙잡고 mRNA 백신을 개발해 냈다”며 “한국에서는 우한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한다고 하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6월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차세대 mRNA 백신 플랫폼 기술 컨소시엄(이하 K-mRNA 컨소시엄) 출범식에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협약서에 서명한 참석자들과 주먹을 맞대고 있다./보건복지부 제공

하지만 예산을 삭감한 정부 탓만 하기에 글로벌백신개발사업단의 성과가 미미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국산 mRNA백신을 개발하겠다고 SK바이오사이언스 에스티팜 등 기업과 학계로 구성된 범정부사업단을 출범하고 예산을 투입했지만, 아직까지 mRNA로 백신을 만들어 임상 2상에 진입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묵현상 국가신약개발사업단(KDDF) 단장은”어떤 사업이든, 예산 지원을 받으려면 그 사업의 가치를 입증할 데이터를 제시해야 하는데, 해당 사업단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묵 단장은 다만 “현 정부에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소식에 과학자들의 연구 의지가 꺾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유사중복 지원한 사례가 있을 수 있으나, 현재 예산 구조 안에서 지난 2년의 연구개발이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업들과 연계해서 지속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사업단에 참여하는 전문기관들과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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