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병자’ 2.0 소환된 독일…우익 정당 급부상[디브리핑]

2023. 9. 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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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독일 서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금융지구 모습[AFP]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독일은 다시 한번 ‘유럽의 병자’가 됐으며 특히 국가 에너지 전략 측면에서 마주하는 반발이 우익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스 베르너 신 독일 경제 싱크탱크 이포(Ifo) 경제연구소 회장은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의 연례 국제경제회의인 암브로세티포럼에서 CNBC와 만나 이같은 우려를 전하며 “이것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는 독일 산업의 핵심인 자동차 산업과 관련이 있으며 많은 것들이 여기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은 원래 1998년 동·서독 통일로 천문학적인 비용에 허덕이는 독일 경제를 설명하면서 생겨났다. 하지만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서 제조업이 계속 정체되고 비싼 에너지 가격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유럽의 병자’라는 별칭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2분기 독일의 경제 성장률은 전기 대비 0.0%로 제자리걸음 했다. 7월엔 국제통화기금(IMF)이 독일 경제가 2023년에 위축될 것이라고 예측, 주요 7개국(G7) 중 올해 유일하게 역성장(-0.3%)할 것이라고 예고한 것이 이 호칭에 힘을 실어줬다.

제조업 강국으로 알려진 독일의 이미지를 먹칠하는 사건도 마침 일어났다. 지난달 15일 아날레나 베어복 독일 외교장관이 정부 관용기가 이틀 동안 두 차례나 고장나는 바람에 인도·태평양 순방을 결국 취소하면서 독일 국내외 언론의 한탄이 이어졌다. 이전에도 독일 정부의 관용기들은 노후로 인한 고장으로 고위 관리들의 해외 출장이 번번이 취소 또는 변경시키는 원인이 됐었다.

아날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정부 항공기편으로 뉴욕 출장을 마치고 독일 본의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dpa]

독일 경제의 심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동차 산업도 예전만 못하다.

독일 뮌헨에서 5일 개막한 유럽 최대 모터쇼 ‘IAA 모빌리티 2023’를 관람하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쇼는 독일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며 “수십년 동안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우수성과 소비자 매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업계를 장악했지만 전기 자동차로 전환되면서 뒤쳐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WSJ은 또 독일 자동차관리센터의 ‘자동차 산업 혁신에 관한 연구’를 인용해 지난해 중국이 배터리, 자율주행차 등 분야의 기술 발전에서 처음으로 독일과 미국을 앞질렀다고 언급했다.

특히 제조업의 부진은 독일의 에너지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 독일 정부가 목표 중 하나는 2045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는 것이다. 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각종 ‘녹색 정책’을 펴오고 있다. 하지만 풍력이나 태양열과 같은 친환경 재생 에너지들은 변동성이 커서 결국 기존 석탄 에너지로 격차를 메우는 이중구조가 만들어졌다.

또 지난 4월 독일은 탈원전의 마지막 조치로 3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했다. 하지만 많은 기후 과학자들은 이러한 조치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언급한 에너지 이중구조가 더욱 고착돼 비용은 두 배로 들게 됐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값싼 러시아 가스가 끊기면서 에너지가격 급등에 브레이크가 사라졌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버그가 지난달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독일 소재 기업들이 에너지가격을 견디다 못해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가스와 전기가 더 저렴한 국가로 사업장을 이전하면 독일은 현재 산업 생산 능력의 2~3%를 잃게 된다.

홀거 슈미딩 베렌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가격 자체가 오른 것도 문제지만, 불확실성이 기업 심리를 더 위축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반발하는 소위 ‘그린래쉬’가 촉발됐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의 부상이 그 결과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2025년 총선에서 현 집권여당인 사민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자보다 AfD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dpa]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특히 연초 독일 정부가 갑작스럽게 ‘석유 보일러’의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재생 에너지로 구동되는 열 펌프로 전환하겠다는 ‘보일러법’을 내놓은 것이 AfD가 부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신 회장도 “분명한 반발이 있고, 그 결과 보수 우파쪽으로 표가 움직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AfD는 ‘반녹색정책’을 표방하며 원자력발전소 폐쇄에 반대해왔다. 원전으로 저렴하고, 안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계속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8월 빌트암존탁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5년 총선에서 사민당에 투표하겠다는 응답자 비율은 18%에 불과했다. 반면 AfD는 21%를 기록했다.

하지만 AfD는 에너지정책과는 별개로 극단적인 우익 집단이므로 나머지 독일 시민사회는 이들의 인기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중이다. 이들은 독일의 유럽연합 탈퇴를 당의 정책으로 내세울 뿐만 아니라 무장 쿠데타를 모의하거나 ‘나치’를 연상케 하는 독일 민족 우월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유럽연합(EU) 최대 경제국에서 극우 세력의 부상은 이민자 유입, 인플레이션, 녹색 정책 시행 등이 포퓰리즘을 어떻게 강화하는지에 대한 경고”라고 밝혔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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