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수에즈 운하가 멈춘 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3. 9. 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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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사진=김화진

2021년 3월에 수에즈 운하가 6일 동안 막히는 대형 사고가 났다. 2만 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싣고 말레이시아에서 네덜란드로 가던 400m(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높이) 길이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이 강한 모래바람으로 균형을 잃고 200m 폭의 운하를 비스듬히 막아버렸다. 사고가 단선 구간에서 발생해 운하 내부에서 369척의 선박이 줄지어 대기했는데 그 때문에 약 96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역사상 가장 비싼 교통체증이다. 지중해와 홍해에도 수많은 선박이 운하 입구에서 대기했다. 하루 100척 정도만 통과할 수 있어서 대기표 문제도 생겼다.

세계 모든 선사와 보험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배를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다른 루트인 아프리카 남단 코스로 돌릴 것인가. 그 코스는 수에즈 통과보다 10일이 더 걸린다. 하루 2만6000달러 연료비도 추가된다. 상황이 언제 종료될지 모른다. 항로를 변경해서 가는데 운하가 재개되면? 타이밍도 문제였다. 코로나로 글로벌 물류 속도는 느려지고 비용은 치솟고 있던 와중에 생긴 사고다. 540억 달러 규모의 물류가 지체되었다. 작은 나라들은 사태 장기화를 우려해 급히 유류배급제를 검토했다.

이집트는 예인선을 동원해 에버기븐을 움직이려고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굴착기로 배가 좌초된 부분의 땅을 파기도 했다. 다 여의치 않자 일본과 네덜란드의 준설선들을 동원해 배 아랫 부분 토사를 파내기 시작했다. 진전이 느린 상태에서 결국 자연의 힘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조수다. 홍해의 수면이 가장 높아졌을 때 예인선들이 마침내 배를 움직일 수 있었다.

2021년의 폐쇄는 역사상 두 번째였다. 수에즈는 1967년 6일 전쟁 개전 때 폐쇄되어서 무려 8년간 봉쇄된 적이 있다. 문제는 봉쇄시 운하 내부에 있던 선박들이다. 오고 갈 수 없게 되었다. 10시간이 8년이 되었다. 선박들이 지중해 쪽에서 운하에 진입해 중간의 호수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전격 폭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집트는 즉시 운하를 봉쇄했고 영국 선박 4척과 미국 선박 1척을 포함한 8개국의 15척이 운하 내에 고립되었다. 6일 만에 전쟁은 끝났는데 운하 동쪽 시나이반도를 이스라엘이 점령해버렸다. 운하가 양국 간 새 국경선이 된 것이다. 이집트는 운하를 파괴하기로 하고 교량과 모든 보조 시설물을 폭파했다. 운하는 사용불능이 되었다.

그 8년간 글로벌 물류는 옛날로 돌아가 물류비 상승은 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운하에 가까운 나라일수록 피해가 컸는데 예컨대 수단의 경우 배가 이탈리아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프리카대륙 전체를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사태가 장기화하자 고립된 선박들을 세 그룹으로 묶어 생활공동체를 만들었다. 사고 당시의 선원들은 모두 소개되었고 소규모 인원들이 6개월 단위로 교체 투입되면서 배를 관리했다. 가장 큰 배의 갑판에서 국가 대항 축구경기도 펼쳐졌다.

그러는 사이에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했다. 이번에는 이집트가 시리아와 함께 이스라엘을 기습했다. 공방 중에 애꿎은 미국 배 1척이 침몰되었다. 휴전으로 전쟁은 종결되었지만 수에즈 운하는 두 번의 전쟁과 관리 부재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되찾은 운하를 이집트가 정비하는 데 무려 2년이 걸렸다. 운하는 1975년 6월에 재개통되었다. 고립되었던 배 중 항행이 가능했던 배는 독일 선박 2척뿐이었다. 그 2척은 본국에 도착해서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

수에즈는 글로벌 물류시스템의 중심이다. 한 해 2만 척 이상의 선박이 통행하는데 세계 물류의 약 12%다. 이집트에 연 약 50억 달러 수입을 가져다 준다. 통행료는 평균 25만 달러다. 인터넷에서 계산해 볼 수 있다.

수에즈의 정치적 취약성과 사고 위험 등을 고려해서 1963년에 이스라엘은 대체 운하를 검토한 적이 있다. 이른바 벤구리온 수로 프로젝트다. 아카바만에서 출발, 네게브 사막을 지나 지중해로 이어진다. 지중해 쪽 출구는 가자지구 바로 북쪽이다. 수에즈보다 더 긴 운하를 건설한다는 이 프로젝트는 비용 문제 등으로 중단되었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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