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석학들, 플랫폼 사전규제 시 혁신 저하 '경고'…"한국, 현명한 선택해야"
인기협, '온라인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세미나' 개최
EU DMA법의 플랫폼 사전규제 허점 지적
"토종플랫폼 경쟁력 지켜야"
[더팩트|최문정 기자] 최근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둘러싼 규제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산업 본연의 혁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전규제보다 사후 법 적용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 등 유력한 자체 플랫폼이 있는 한국은 사전규제 도입에 더욱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온라인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고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을 비롯한 국내 플랫폼 규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티볼트 슈레펠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교수와 미콜라이 바르첸테비치 서리대학교 교수가 참석했다. 유럽권 출신인 두 교수는 최근 유럽연합(EU)이 통과시킨 디지털시장법(DMA)의 한계를 지적하며 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제언했다.
DMA는 시가총액 750억 유로(약 107조 원) 이상이면서 연매출 75억 유로(약 11조 원), 월간 활성이용자(MAU) 4500만 명 이상인 기업 '게이트키퍼'로 규정해 규제한다. 게이트키퍼로 규정되면 내부거래 금지 등 강력한 독점행위 금지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EU는 이날 게이트키퍼에 해당하는 기업 명단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게이트키퍼 포함 예정인 기업에는 아마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바이트댄스뿐만 아니라 한국의 삼성전자 역시 거론되고 있다.
슈레펠 교수는 사전규제인 DMA가 태생부터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출시돼 전 세계를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몰아넣은 오픈AI의 '챗GPT'가 대표적이다. 챗GPT는 현재 IT업계를 넘어 전 산업과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지만, 이에 대한 규정이 DMA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IT·플랫폼 분야는 기술 발전이 빠르고, 역동적인 만큼 좋은 사전규제를 만드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슈레펠 교수는 "사전규제는 업계 현안을 즉시 반영하기 어렵고, 실효성이 없어도 수정하는데 오래 걸리는 등 문제점이 많다"며 "혁신을 유도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사전 규제보다는 문제 발생 시 이를 규제하는 사후 법 집행을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사후 규제만을 채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전 규제를 적응형으로 만드는 것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주제발표를 맡은 바르첸테비치 교수는 DMA 통과로 인해 데이터 개인정보와 보안 측면에서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게이트키퍼 업체들이 타 플랫폼 기업의 메신저와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의 사례를 예로 들면, 카카오톡에서 라인이나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바르첸테비치 교수는 "DMA 시행으로 (빅테크 기업보다 개인정보보호 역량이 약한) 중소 플랫폼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기 쉬워지며 개인정보와 보안이 취약한 상황이 발생해 이용자의 위험이 커질 것"이라며 한국에서는 이를 타산지석 삼아 사전규제의 장단저믈 면밀히 분석해 EU보다 더욱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DMA를 둘러싼 실효성이 제시된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진 중인 유사한 법안인 온플법에도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기정 공정위 위원장은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 호텔에서 열린 '제12회 서울국제경쟁포럼' 개회사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사전 규율이 적절한지, 사후 규율이 적절한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면서도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대형 플랫폼의 자사 우대 행위를 적발하면 엄중히 제재하고 있다"고 강경책을 밝혔다.
이날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EU의 DMA식 사전규제 방식은 온라인 플랫폼의 산업 혁신 동력 약화와 성장을 저해할 수 있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각계의 걱정이 깊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부위원장을 지낸 신영선 법무법인 율촌 고문도 후속 토론을 통해 "EU에서 빅테크 견제 목적으로 사전규제법을 만들었다면, 한국은 자국 토종 플랫폼이 경쟁력을 갖추는 등 유효경쟁이 작동하는 분야가 많아, 딱히 제재를 필요로 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자체 초거대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한 네이버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토종 플랫폼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사전 규제가 아닌 자율 규제의 필요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24일 콘퍼런스 '단23' 기자간담회에서 "온플법과 관련해 여러 의견을 듣고, 또 드리고 있지만 사전 규제보다 자율규제를 전략적 틀로 잡아주길 바라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초거대 AI 등 여러 기술을 두고 글로벌 기업들이 국경을 넘어선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대부분 로컬 사업자가 아닌 글로벌 사업자들이 독과점 이슈를 쥐고 있다"며 "이 때문에 기술 주권 이슈가 나오고 있고, AI 시장에서 네이버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munn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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