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출산은 어떠했을까?…양반 여성 1명당 평균 5.09명 출산

박천학 기자 2023. 9. 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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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조한 출산율로 국가 소멸 위기론마저 불거지는 가운데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시대였던 조선 시대의 출산 장려와 제한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조선의 출산문화'라는 주제로 발행한 스토리 테마파크 웹진 담談 9월호에 따르면 박희진 경북대 교수는 '조선의 출산 조절기제와 문화'에서 조선 시대에는 양반 여성 1명이 평균 5.09명을 출산했고 이 가운데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남성은 1.25명 수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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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률 높은 시대로 많은 아들 원해
제사 모실 수 있는 남성은 1.25명 수준
조선 시대 출산 후 차려놓은 삼신상.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제공

안동=박천학 기자

저조한 출산율로 국가 소멸 위기론마저 불거지는 가운데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시대였던 조선 시대의 출산 장려와 제한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조선의 출산문화’라는 주제로 발행한 스토리 테마파크 웹진 담談 9월호에 따르면 박희진 경북대 교수는 ‘조선의 출산 조절기제와 문화’에서 조선 시대에는 양반 여성 1명이 평균 5.09명을 출산했고 이 가운데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남성은 1.25명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라 아들이 있어도 더 많은 아들을 원했다. 특히 18세기 종법 질서의 강화로 아들을 낳아 가계를 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여성에게 지워지며 다양한 문화적 행위가 만들어졌다. 바위를 쓰다듬거나 껴안기도 하고, 돌을 넣거나 타고 놀기, 동전이나 돌 붙이기, 구멍에 나뭇가지 등을 끼우기 등의 행위로 유사 성행위를 흉내 내는 행태로 나타났다.

다산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출산율은 17세기 이후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출산율 하락의 원인으로 성에 대한 터부, 여성의 재가 금지 등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을 대표로 하는 성을 금기시하는 풍속은 가옥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했고, 성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 ‘씨 내리는 날’을 정해 남편이 안채와 사랑채를 오고 가는 것이 암묵적 관행이었다. 쾌락으로서의 성을 터부시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의식이 드러나는 속담이 지역마다 생길 정도로 고착됐다. 또 여성의 주체성 제한과 함께 사족 여인들의 재혼 금지 풍속은 일반 평민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기도 했다.

박 교수는 “사회 인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회변동과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사회의 한 구성이므로 오늘날 한국의 인구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존재하는 장기적 사회구조와 변동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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