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칼럼] 브랜드 어그리게이터
코로나19로 e커머스가 급성장하면서 2~3년전부터 '브랜드 어그리게이터'(Brand Aggregator)란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모델이 각광을 받았다. 아마존, 쇼피파이와 같은 거대 e커머스 플랫폼에서 소비자에게 인기가 많고 수익을 내고 있는 중소형 브랜드를 끊임없이 인수,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극대화해 기업가치를 빠르게 끌어올리려는 회사를 의미한다.
선두주자인 미국의 스라시오(Thrasio)는 200개 이상 브랜드를 인수, 2018년 사업을 시작해 불과 2년만에 4조 원이상 투자를 받으며 13조원의 기업가치로 데카콘기업이 됐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베를린 브랜드그룹과 레이저는 각각 1조 8000억원, 1조 5000억원, 미국의 퍼치도 1조 1000억원의 펀딩에 성공했으며 이들 모두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이외에도 수십개 회사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 투자를 유치했고, 어그리게이터는 투자자가 가장 선호하는 비즈니스모델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신성장 산업으로 주목을 받으며 짧은 시간에 수십개 기업이 브랜드 어그리게이터 시장에 진입, 높은 기업가치로 자금을 확보했다.
하지만 천문학적 자금을 확보한 이후 8개월 만에 스라지오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며 CEO는 해임됐다. 한 때 IPO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생존이 급급한 상황이다. 신기하게도 엄청난 자금을 모았던 다른 기업도 비슷한 형편에 놓여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씨비인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80여개 어그리게이터가 15조원의 자금조달에 성공했으나 올해에는 불과 5개 기업이 2000억 원을 유치하는데 그쳤다. 불과 얼마 전까지 '디지털 P&G'라는 찬사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던 e커머스 어그리게이터들은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시장에서 외면을 당하게 됐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제시됐지만 다수의 업체 난립으로 브랜드 인수 경쟁심화에 따른 인수가액 상승, 지나치게 낮은 진입장벽, 차별화 전략 실패, 팬데믹 기간에 급성장했던 시장의 급격한 냉각 등이 실패의 주원인으로 지적됐다. 또 속도를 중시하며 매주 2~3개 브랜드(셀러)를 인수했지만 정작 내부통제, 컴플라이언스, 인수 후 통합 작업은 전무했으며,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눈에 띄는 엑시트 성공사례가 없었다는 것이다. 천문학적 돈을 투입했지만 회수를 못하니 투자자들은 추가 투자를 멈췄고, 결국 대부분 어그리게이터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실 어그리게이터는 그럴듯한 전략을 표방했지만, 혁신이나 규모의 경제가 아닌 전형적인 '금융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비즈니스모델이다. 규모가 작은 회사는 IPO가 쉽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기업가치로 쉽게 인수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금만 충분하다면 이익을 내고 있는 소형 브랜드를 수십 개, 수백 개 인수해 규모를 키우면, 매출이나 이익성장률이 높으면서도 엑시트도 가능한 회사로 쉽게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저금리의 산물이었던 어그리게이터는 이자율 상승, 경기 침체, 전자상거래 역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일장춘몽으로 사라지는 분위기다. 엔데믹으로 오프라인 매장이 다시 문을 열자 e커머스 시장은 정체되고 대부분 소규모 브랜드 가치가 급락했고, 아울러 어그리게이터의 기업가치도 폭락했다.
이로 인해 생존을 위해 대부분 인력을 내보내고, 비용을 급격히 줄이고 마침내는 비즈니스의 핵심인 브랜드 인수를 포기하고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 됐다. 지난 주에도 미국의 베니타고 그룹이 파산신청을 했고, 독일의 셀러엑스가 미국의 엘리베이트 브랜드를 인수하는 등 계속해 문을 닫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으며 동시에 어그리게이터간 합종연횡도 증가하고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망 중소 브랜드의 육성과 엑시트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어그리게이터는 스타트업에게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지금이야 말로 브랜드 어그리게이터가 추구했던 진정한 규모의 경제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 사업모델이 절실하다. 우리나라에서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금융계좌 암호화” 정부 검토에 은행권 반발
- 4000억 '인체 미생물 연구' 예타 준비
- 尹, 아세안에 “한미일 확고한 지지”..안보·경제 협력 강화
- 美 허리케인 위로 '번쩍'…일반 번개보다 50배 강력한 '붉은 번개'
- 한덕수 총리 “한미일 동맹으로 北 도발 의지 꺾어”
- 사업자-발주자 '공공SW 불합리 발주관행' 공감…개선 한목소리
- TV OS '구글' 독주 속 삼성·LG 추격 안간힘
- 박진효 SK브로드밴드 대표, 첫 타운홀 미팅…“SK텔레콤과 시너지 강화”
- [뉴스줌인] 은행 “계좌번호 암호화에 2조원 필요...” 돈잔치에도 정보보호에는 소극적 비판도
- 스타트업 코리아 맞춰 벤처투자·인증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