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원수 총 쏴 죽이고 ‘징역 100년’… 美 한인 장기수 서씨 사연
30년간 모범수 생활, 네 번째 사면 청원
열아홉 살에 누나의 동거남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징역 10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한 장기수의 사면 여부가 미국에서 관심받고 있다.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에서 시카고로 이주한 한인 남성 앤드루 서(49·한국명 서승모)씨의 이야기다.
시카고 트리뷴은 5일(현지시각) 서씨가 J.B.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에게 제출한 특별사면 청원이 수개월째 계류 중이라며 “서씨는 교도소에서 30년을 살며 보인 모범적 모습이 용서를 얻을 수 있길 바라고 있고, 쿡 카운티 검찰 역시 사면에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프리츠커 주지사가 사면 대상자를 최종 결정할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씨를 후원하는 단체는 그가 지난 3월 낮은 보안등급의 교도소로 이감된 것을 고무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매체는 “서씨의 사면 청원이 또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1993년 제정된 법에 따라 그가 모범수로서 쌓은 신용, 노동 시간, 재활 프로그램 이수 등을 인정받아 6년 후쯤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앞서 서씨는 1993년 9월 범행 이후 1995년 재판에서 징역 10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80년형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2002년, 2017년, 2020년 세 차례에 걸친 사면 청원은 모두 거부됐다. 서씨가 올해 재차 넣은 청원은 지난 4월 일리노이 수감자 심사 위원회(IPRB) 심의를 거쳐 프리츠커 주지사에게 전달된 상태다.
◆가족 위해 택한 살인, 그가 몰랐던 진실은
서울에서 태어난 서씨는 두 살 때인 1976년 군 장교 출신 아버지와 약사 출신 어머니를 따라 미국 시카고로 이민했다. 그러나 9년 만에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는 불행이 찾아왔는데, 당시 서씨는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를 곁에서 지극정성 간호했다. 잠든 자신을 언제든 깨울 수 있도록 아버지 손목에 끈을 묶어 몸에 연결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질 정도로 주변인들에게 효자로 불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어머니가 세탁소를 운영하며 서씨와 5살 위 누나 캐서린을 키웠다. 하지만 2년 만에 어머니 역시 강도 흉기에 37차례 찔려 살해당하는 비극이 찾아왔다. 서씨는 캐서린에게 의지해 유년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지만 서씨는 어긋나지 않았다.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해 학생회장을 맡았고 미식축구 선수로도 뛰었다. 대학 진학 때는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그렇게 꿈 많던 그의 삶을 단번에 뒤엎은 사건은 대학교 2학년 때 일어났다. 그가 누나 캐서린의 동거남이었던 로버트 오두베인(당시 31세)을 총으로 쏴 살해한 것이다. 이 일을 부탁한 건 캐서린이었다. 당시 캐서린은 동생에게 “오두베인이 엄마를 죽였다. 상속받은 재산을 도박으로 탕진하고 나를 학대한다”며 권총과 도주용 항공권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사건 이면에는 다른 의혹이 숨어있었다. 캐서린이 80만 달러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돈 문제로 갈등을 빚던 어머니를 오두베인과 함께 살해했다는 추정이 나온 것이다. 실제로 당시 캐서린과 오두베인이 용의선상에 오른 바 있으나, 서로의 알리바이를 보장해준 덕분에 수사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오두베인이 살해된 직후에도 서씨는 죄책감을 호소하며 자백했지만, 캐서린은 도주했다.
서씨는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캐서린이 생명 보험금을 받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캐서린은 오두베인 사건 6개월 후 하와이에서 체포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서씨는 2010년 다큐멘터리 영화 ‘하우스 오브 서’(House of Suh)에서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누나를 보호하는 길이라 생각했다”며 “가족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서씨는 지난 세월 동안 감방에서 모범수로 지내왔다. 동료 수감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3개 국어에 능통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며,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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