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e스토리] 페이커 빈 자리 채웠던 T1 '포비' 윤성원의 여름

박상진 2023. 9. 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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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T1은 LCK 서머 스플릿을 준우승으로 마쳤다. 지난 2022년 여름부터 LCK만 연속으로 세 번, 그것도 젠지 e스포츠에게만 연달아 결승에서 지며 T1은 대회 통산 11회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다. 국제 대회까지 포함하면 결승에 오르면 이기지 못하는 아쉬운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조금 달랐다. 그 어느 여름보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T1이 LCK에 출전한 첫 해부터 '페이커' 이상혁을 두고 생각할 수 없었다. T1의 기록이 곧 페이커의 기록과 다를바 없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몇 가지 이유로 페이커가 경기에 나오지 않았던 시기는 있었지만, 이번 여름 페이커는 선수 커리어 처음으로 부상 회복을 위해 휴식을 알렸다. 처음은 2주 정도를 예상했지만 페이커는 결국 4주 동안 열린 8경기를 출전하지 못했다.

또한, 이번 페이커의 휴식은 그야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전까지 페이커가 나오지 못할때는 어떠한 이유로든 페이커 대신 출전할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 T1은 5인 로스터로 운영됐다. 누구든 빠지면 전력 약화가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결국 T1은 2군격인 LCK 챌린저스 리그에서 미드 라이너를 콜업했다. 바로 '포비' 윤성원이다.
 

윤성원의 2023 LCK 서머 스플릿 기록은 1승 7패다. 갑작스레 LCK에 출전했고, 중간에 코칭스태프 변동도 있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2023년 LCK 전체 시즌이 끝나고 만난 포비에게 가장 먼저 올해는 어땠는지 물어봤다. "CL에서도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시기에 갑자기 LCK에 출전하게 됐는데, 가서 많이 배우고 와서 의미있는 한 해였습니다. 저도 올해 LCK에 출전할 수 있을지 몰랐어요. 그래도 저는 그때까지 열심히 했었다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제게 좋은 기회로 와서 좋았고요. LCK 선수들과 대결하면서 초반 경기 구도에 대해 많이 익혔고, 같이 출전했던 형들에게 운영과 경기 내 콜에 대해 많이 배웠죠."

앞서 말했듯 포비의 성적은 1승 7패. 덕분에 LCK에서 한 달을 뛰었지만 시청자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없었다. 그렇다면 포비는 어떻게 프로게이머가 됐고, 왜 T1에 입단해 페이커 대신 한 달 LCK 경기에 나서게 됐을까?

2006년 생인 포비는 중학생 시절 친척 형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는 것을 보고 같이 시작한 것으로 게이머의 길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주로 미드 카타리나로 게임을 하던 포비는 중학교 3학년 시기 실력이 오르며 덩달아 티어도 올랐고, 그러면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다. 그런 포비의 눈에 보였던 것은 T1 아카데미 모집 공고였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기 전에는 경기를 보지 않았던 포비는 잘 한다는 주위의 평가와 함께 PC방 대회에서도 성적이 좋아지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다.
 

여느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포비의 부모님도 처음에는 프로게이머의 길을 반대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걱정과 반대는 아니었다. 챌린저 티어에 올라가면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는 부모님의 이야기에 기어이 포비는 챌린저를 달성하고 부모님의 허락과 함께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항상 최고의 팀, 최고의 선수가 모이는 팀인 T1에 지원해 입단했다.

비록 아카데미 팀이긴 하지만 T1에 미드라이너로 입단했다는 것은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한 일이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모두가 꿈꾸는 LCK 무대에 출전하려면 결국 페이커와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비의 생각은 확고했다. "항상 저는 T1 미드 라이너로 LCK에 출전하겠다는 목표를 가졌어요. 물론 이번 출전은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보겠나는,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LCK 출전을 준비했죠. 이렇게 말은 하지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다행히 LCK 선수들의 연습실에 갔을때 같이 경기에 나설 형들과 연습을 해보고 저만 잘하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경기 화면으로 볼 때보다 더 잘했거든요. 형들이 정말 저를 잘 이끌어줘서 이후에 걱정은 많이 줄었어요"

생각보다 엉뚱하고 재미있었다는 '제우스' 최우제, 어른스럽고 이끌어주려 하는 '오너' 문현준, 게임 안밖으로 항상 자기를 챙겨줬다는 '구마유시' 이민형-'케리아' 류민석과 함께 포비는 페이커가 없는 T1의 미드 라이너로 LCK 경기에 출전했다. 포비는 자신의 커리어 첫 LCK 경기에서 긴정을 했지만, 원래 자신있던 라인전 단계에서 충분히 할만 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라인전이 끝나고 운영이나 대규모 교전에서의 움직임에서는 부족한 모습을 보여 아쉽다고 말했다. 자신의 첫 승리이자 올해 유일한 승리였던 농심전이 끝나고 포비는 날아갈 거 같은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LCK 팬들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인터뷰 기회를 얻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고 말하는 포비였다.
 

하지만 이후 그에게 LCK 승리는 없었다. 연패에 연패를 거듭했다. 신인에게는 가혹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커리어 첫 해 기록을 1승 7패로 남기고 싶지 않았을 거다. "연패를 겪으면서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속상했죠. 그래도 옆에서 형들이 계속 잘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괜찮았다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예상보다 2주가 더 걸렸지만 한 달 만에 페이커가 다시 복귀했고, 자연스레 포비는 다시 원래 리그였던 CL로 돌아갔다. CL로 돌아가는 포비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래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며 자신의 LCK 기간에 대해 말했다.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페이커 역시 포비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손목이 좋지 않은 와중에서도 치료 시간 외에는 연습실에 들러 포비의 경기를 보면서 피드백을 했던 페이커는 포비에게 연습만큼이나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중요하고, 독서도 권유했다. 그런 페이커를 보며 포비는 정말 인성이 훌륭한 대단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많은 승리를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포비는 같이 출전했던 형들에 대해 좋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연패를 거듭하며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마냥 움츠러들어 있지도 않았다. 선수들이 인터뷰를 통해 전했던 것 처럼 팀 분위기 자체는 좋았고, 선수들도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중간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즉흥적으로 진행됐던 T1의 제주도 여행에서 포비는 스노클링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수영 실력에 대해 포비가 말한 답이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저는 어릴때 수영을 배웠긴 하지만, 그래도 형들이 수영을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더라고요."
CL로 돌아가면서 포비는 같이 한 달 동안 경기했던 동료들에게 편지를 남겼던 것도 화제가 됐다. 같이 있는 동안 신경을 써준 것에 대해 감사의 의미로 편지를 썼다는 포비는 거의 편지를 써본 적이 없었지만, CL로 복귀할 때 제대로 인사를 못하고 온 거 같아 용기를 내 편지를 전했던 것.
 

포비가 CL로 복귀하고 페이커가 LCK에 복귀하며 T1은 다시 승리하기 시작했다. 서머 정규 일정 마지막 두 경기는 물론 플레이오프에서도 젠지에게 패한 두 경기 외에는 모두 승리했다. 플레이오프도, 결승전도 관중석에서 T1을 지켜본 포비는 이후 경기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형들이 (이)상혁이 형이랑 게임하다가 저랑 게임하면서 놓치는 게 많아졌을 거에요. 제가 그만큼 LCK에서 경기하기에는 부족했으니까요. 그래도 상혁이 형이 복귀해서 T1이 잘하는 걸 보고 정말 상혁이 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아무래도 게임에서 미드 라인의 영향력이 정말 컸는데, 제가 들어오고 부족한 면을 보이면서 그만큼 나머지 팀원들이 그걸 채우려고 하다보니 힘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경기장에 왔을때 방송 카메라로 저를 잡아주고, 길에서도 저를 아는 분들이 늘어서 신기해요."
 

승보다 패가 많았던 커리어 첫 LCK를 마친 포비는 내년에는 CL에서 최고의 미드가 되겠다는 목표를 전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콜업되어 아쉬운 기록을 남겼지만 포비는 오히려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재차 전했다. "성적은 아쉽지만, 제가 부족한 부분이 뭔지 제대로 알게 됐죠. 그리고 같이 고생한 형들도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고 많이 알려줘 정말 감사하고요. 그리고 올해 여름에 배운 거로 언젠가는 꼭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하고 싶어요."

LCK 경기 후 인터뷰로 팬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포비는 인터뷰를 마치며 방송에서 하지 못했던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편지도 많이 써주시고, 선물도 보내주셔서 LCK에서 활동하던 동안 정말 감사했는데 이를 전할 방법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저를 생각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항상 열심히 하는 포비가 되겠습니다."
 

박상진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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