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신분증에 속아도 미성년자에게 술 팔면 무조건 영업정지?...법적 대응 나선 업주들
‘영업정지’ 노린 경쟁업체가 미성년자에게 술 마시도록 사주하기도
“행정당국이 영업정지 처분에 유연성 발휘해야” 주장도
“속인 사람이 문제지, 속은 사람 잘못인가요?”
지난 3일 공개된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결에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다. 문제가 된 판결은 작년 한 음식점 점주가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뒤 이를 취소하기 위한 소송에서 패소한 것이다. 업주는 미성년자들이 성인 신분증을 제시했고 일부는 진한 화장을 하고 있어 미성년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듯 미성년자들에게 속아 술을 팔았다가 행정당국에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자영업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 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히 일부 점주들만 영업정지 처분이 취소됐다. 이들은 사전에 미성년자 출입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충분히 입증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조선비즈가 2019년부터 올해 5월까지 미성년자 주류 판매로 처분받은 영업정지를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과 전국 지방법원에 제기된 소송 판결문 32건을 분석한 결과, 영업정지 처분이 취소된 사례는 4건에 불과했다. 28건은 영업정지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위조 신분증에 속았어도 ‘영업정지’…일부 로펌 TF 운영
식품위생법 제44조는 청소년에게 주류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청소년에게 주류를 제공하면 1차 적발 시 영업정지 60일, 2차 적발 시 영업정지 180일, 3차 적발 시 영업허가 취소 등 행정처분을 받는다. 면책 조항으로 “식품접객영업자가 신분증 위·변조나 도용으로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해 불송치·불기소되거나 선고유예 판결을 받으면 행정처분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법원은 해당 조항을 좁게 해석하고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행정9단독 박지숙 판사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가 서울 서초구청을 상대로 낸 영업정지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15∼16세 미성년자 4명에게 주류를 판매했다며 2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A씨는 미성년자들이 성인 신분증을 제시했고 여성은 진한 화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식품위생법 면책조항을 근거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업주가 청소년들에게 기만당했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영업정지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미성년자인 손님이 스스로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서 마셨더라도 영업정지 처분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의정부지법은 2021년 B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손님이 소주를 꺼내서 마셨다는 것을 보고서도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영업정지 처분 취소 ‘평소 많은 신경 썼는지’ 입증에 달려
법조계는 자영업자가 사전에 청소년 출입 방지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여부가 재판 결과를 가른다고 보고 있다. 실제 서울행정법원 2019년 미성년자에 양주를 제공해 영업정지 1개월 처분을 받은 C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C씨 손을 들어줬다.
미성년자는 성인 일행들과 동석하기 위해 정문이 아닌 화장실 근처 뒷문으로 직원 모르게 입장해 술을 마셨다. 당시 재판부는 “가게 출입 데스크에는 신분증을 검사하는 기계인 ‘암행어사’가 있고, 손님들은 그 기계로 신분증을 검사한 다음에야 출입할 수 있다. 업주 C씨도 직원들에게 청소년 출입 방지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이유를 밝히며 영업정지 처분을 취소했다.
방재웅 법률사무소 로율 대표변호사는 “행정소송에서 영업정지 처분이 취소되려면 자영업자가 신분 확인 절차 등을 제대로 진행했어야 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청소년의 적극적인 사술(詐術)로 이를 밝히기 어려웠던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처분 면책 조항은) ‘면제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어도 반드시 면제되는 게 아니다”라며 “(행정처분 면책 조항으로) 면제되려면 신분증 위·변조나 도용으로 업주가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이로 인해 불송치·불기소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아야 하는 요건 두 가지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행정 당국이 영업정지 처분에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쟁 업체 영업 방해를 위해 성인과 모습이 유사한 미성년자를 사주해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경우에도 법정 공방 끝에 처분이 취소되는 실정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서 보자면, 손님을 받을 때 미성년자인지, 미성년자가 경쟁 업체 사주를 받은 것인지 등을 확인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도 관련 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영업정지 처분은 엄격히 관철되는 행정실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자영업자가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아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행정당국이 여러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려 업주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행정처분 시 전후 맥락을 충분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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