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하려 했는데, 대안 없다”… 시공사와 ‘불편한 동행’ 택한 조합들

채민석 기자 2023. 9. 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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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2구역, 17일에 시공사 대우건설 재신임 여부 결정
시공권 유지에 무게추… 사업속도, 공사비 문제
시공사 ‘선별수주’ 기조… “재선정 절차 나설 조합 많지 않아”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 재정비촉진구역 전경. /연합뉴스

공사비 문제 갈등을 빚고 있는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최근 몸을 낮추고 다시 해당 시공사에 손을 내밀고 있다. 건설경기 한파에 건설사들이 국내 도시정비사업 비중을 줄이는 등 선별수주 움직임을 보이자 새 시공사 선정이 어려워진 탓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 재개발조합은 오는 17일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현재 시공사인 대우건설에 대한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조합 내부에서 시공사 교체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대우건설의 시공권 유지에 무게추가 기우는 분위기다. 대우건설 또한 주민설명회를 여는 등 시공권 유지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공사 선정 당시 대우건설은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 90m의 높이 제한을 118m로 완화하고, 층수도 원안 설계인 14층에서 21층으로 높이는 대안설계 ‘118프로젝트’를 제시한 바 있다. 한남2구역 조합원들을 설득한 데 성공한 대우건설은 경쟁사인 롯데건설을 50표 차이 이상으로 누르고 시공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서울시 측에서 높이 제한 완화가 어렵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118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조합은 대우건설의 시공권 박탈을 추진했다. ‘공수표’를 남발했고, 시공사 선정 이후로 1년 가까이 프로젝트에 진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우건설의 운명은 오는 17일 결정될 예정이지만, 업계에서는 시공권 유지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새 시공사가 구해지지 않아 사업이 더뎌질 수 있고, 시공사를 교체한다 해도 원자잿값 상승추세로 현재 3.3㎡(평)당 770만원으로 책정된 공사비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과의 법적 분쟁 가능성도 부담 요소다. 지난 1일 한남2구역 대의원회의에서 상정된 ‘대우건설 시공자 선정 재신임 총회상정의 건’이 총 88표 중 반대 60표로 부결되기도 했다.

이처럼 갈등의 골이 깊어짐에도, 계약 해지 후 뒤따라 올 리스크에 울며 겨자먹기로 시공사와 ‘불편한 동행’을 하는 정비사업지는 한남2구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5월, 이사회에서 GS건설·대우건설·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과의 계약해지 안건을 가결했던 경기 성남 산성 재개발조합은 지난 6월부터 시공단과 재협상을 벌이고 있다.

조합은 시공단이 평당 공사비를 445만원에서 661만원으로 44%가량 올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 안건을 가결하고 새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 설명회에는 기존 시공단과 중견 건설사 한 곳만이 참여했으며, 본입찰에서는 단 한곳도 입찰하지 않았다. 이에 조합은 기존 시공단과 재협상을 벌였고, 현재 시공사가 제시한 평당 629만원의 공사비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11일 시공사 재선정 입찰 공고를 마감하는 서울 송파구 미성·크로바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도 비슷한 상황이다. 조합은 지난 7월 20일 서울고등법원이 시공사가 조합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며 시공사 선정 총회가 무효라고 판단하자, 대법원 판결 전에 선제적으로 시공사 재입찰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사업지의 공정률이 15% 이상이고, 롯데건설이 조합 측에 사업비 1300여억원을 지급보증 해줬기 때문에 타 건설사들이 쉽사리 입찰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조합 관계자는 “롯데건설이 시공권을 다시 가져갈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정비사업 조합들이 한 번 시공 계약을 체결한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하기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조합들이 선호하는 소위 ‘1군 건설사’로 불리는 시공능력순위 10위권 내의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수주를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계약을 해지하고 재선정 절차에 과감히 나설 수 있는 사업성을 보유하고 있는 구역도 흔치 않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1000가구 이상의 대단지가 들어설 구역도 수의계약을 고려해야 할 만큼 전반적으로 시공사 선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선정한 시공사를 교체할 여건이 되는 조합이 몇이나 되겠나”라고 했다.

그는 “재선정 절차에 돌입하면 사업이 수년간 지연될 수 있고, 원자잿값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공사비가 더 오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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