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전관’ 아닌 ‘안전 수탈 구조’가 문제다

한겨레 2023. 9. 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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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 인천시 서구 검단 신도시 아파트 공사 현장의 처참한 모습. 연합뉴스

[기고] 함인선 |한양대 특임교수·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철근 누락 아파트로 촉발된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를 당국은 이번에도 ‘전관 타파’ 정도로 마무리하려는 모양새다.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의인화’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 정치 전략이다. 구체적 대상을 내세워 대중의 분노를 소진시키면서 정작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전관만이 문제라면 이제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려나? 천만의 말씀이다. 비유컨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전관은 곰팡이다. 습기를 걷어내지 않는 한 곰팡이는 계속 슬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전관 업체가 용역을 싹쓸이한 게 아니라, 설계에서 철근을 누락하고 누락을 발견해야 할 감리가 제구실을 안 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짜인 건설업 생태계의 구조가 있다. 오랜 기간 문화로 정착된 ‘안전 수탈 구조’가 그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한국 건설업계에서는 안전을 수탈해야 원가경쟁력을 가진다. 전관은 그런 좀비 업체의 영업 수단일 따름이다.

건설 비용은 재료비 등 직접비와 시공 과정 비용인 간접비로 구성된다. 이윤은 간접비에서 나오니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안전장치 가설 비용 등을 줄여 손익을 맞추려는 압력이 건설 현장을 지배한다. 공기에 쫓겨 콘크리트가 굳기도 전에 동바리를 해체하다 붕괴해 6명이 숨진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 아파트가 그런 사례다. 지난해 건설 사고 사망 사건 가운데 추락사가 58%인 것도 현장에서는 안전 비용 지출에 여전히 인색하다는 증거다.

더구나 이번에 문제가 된 인천 검단 아파트는 ‘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CM) 방식으로 발주됐다. 시공사이자 감독자인 지에스(GS)건설이 공사비를 줄이면, 발주자인 엘에이치와 절감분을 나눠 가지는 방식이다. 공사비(=공기) 절감이란 지상 과제 앞에서 날림 작성된 설계도 검토는 생략되고, 현장에서 철근을 세는 계측감리자도 눈치껏 했을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는 이 고약한 제도의 기원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행주대교(1992), 성수대교(1994), 삼풍백화점(1995) 붕괴 등 개발연대의 악성 종기가 연이어 터지자 정부에서는 ‘책임감리제도’를 도입한다. 지금의 전관처럼 그때는 설계자와 시공자가 원흉이 되면서 제3의 업종이 등장한 셈이다.

이후 이들 감리 회사 카르텔은 힘을 키워 급기야 2016년에는 ‘건설사업관리제도’가 도입된다. 발주자를 대행해 기획, 설계에서 시공까지 전반을 관리하는 제도다. 이들은 이를 통해 발주기관의 감독 권한까지 지닌 견제받지 않는 존재가 됐다.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데다 전관 일자리까지 생기는 이 제도를 발주기관이 애용했음은 물론이다.

검찰이 지난달 30일 엘에이치 발주 건설사업관리 용역 입찰에서 수천억원대 짬짜미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11개 대형 감리 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짐작했고 예견했던 바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전관 업체라는 사실은 본질이 아니다. 이들 소수 독점 업체들이 경쟁과 견제를 봉쇄한 결과, 기술자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국민 안전과 재산에 해를 끼치게 됐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선진국 가운데 발주기관이 감독·감리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공공의 책임 회피 본능과 감리 카르텔의 이해가 맞아 탄생한 건설사업관리제도를 손봐야 하는 이유다. 우선 엘에이치부터 발주 업무를 분리하고, 그 인력을 현장으로 돌려 감리·감독 업무에 투입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선진국들처럼 ‘공공건축지원센터’를 설립해 기획·발주·감리·사후관리 업무를 맡게 해야 한다.

설계자가 제 설계 대신 남의 설계를 감리하는 코미디 같은 제도 또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대형 감리 회사들은 모두 설계 회사이기도 하다. 디자인 감리와 계측 감리는 설계자가 수행하게 해 사업관리의 무소불위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을 수탈해 원가를 절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건설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12%에서 4%대로 줄었으나, 산재 사망 비율은 여전히 50%대를 차지한다. 안전을 대가로 싸고 빨리 건설하는 행태는 오히려 늘었다는 뜻이다. 이제라도 안전은 공짜가 아니며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용기 있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번에도 애먼 전관 번제로 본말을 흐리며 넘어가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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