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서울’ 보는 듯…인도, G20 앞두고 빈민가 ‘청소’
빈곤 감추기 위한 ‘미화 작업’ 논란
정부 “불법이라 철거한 것” 선 그어
“너무 무서웠다. 모든 것을 파괴했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인도 뉴델리에서 자신의 판잣집이 불도저에 헐리는 것을 지켜본 자얀티 데비(56)는 CNN에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컨벤션 센터 ‘프라가티 마이단’ 맞은편 길가에 거주해 왔다. 프라가티 마이단은 오는 9일부터 시작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장소다. 인도 당국이 지난 5월부터 벌인 철거 작업으로 인해 데비와 같은 처지가 된 이들은 수만명으로 추산된다.
5일(현지시간) CNN·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철거 대상이 된 집들은 빈민들의 주요 터전인 판잣집이나 무허가 주택들이다. 집을 빼앗긴 이들은 세계 각국 정상을 맞이하는 인도 정부가 자국의 빈곤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빈민가를 ‘청소했다’고 비판한다.
13년 동안 살던 판잣집을 잃은 쿠시부 데비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안 좋아 보인다면 다른 멋진 걸 만들거나, 무언가를 씌워서 안 보이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꼭 이렇게 제거해야만 하느냐”고 말했다. 사회운동가 하시 맨더는 “충격적이게도 인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빈곤을 부끄러워한다. 인도를 찾는 이들에게 빈곤이 눈에 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G20 의장이자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자로서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 해결을 강조해 온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정작 국내의 빈곤한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인도 정부는 단지 불법 건물이기 때문에 철거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카우샬 키쇼어 주택장관은 지난 7월 의회에서 “7월27일까지 뉴델리에서 최소 49차례의 철거 작업이 진행됐다. 이중 G20 정상회의 때문에 도시를 아름답게 하려는 차원에서 철거된 집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델리의 불규칙한 주거 형태가 하루 이틀 된 문제도 아닌데, 왜 하필 대규모 국제행사를 앞둔 지금 시점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느냐는 의구심이 인다. 2021년 당시 주택장관은 뉴델리 전체 인구 약 1600만명 중 약 1350만명이 도시 계획상 미인가 지구에 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가를 받은 지역에 사는 사람의 비율이 23.7%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네 딸과 함께 쫓겨난 사비타는 “우리는 이곳에서 40년 넘게 살아왔다. 정부는 왜 이 집을 더 일찍 철거하지 않고 지금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부터 허물었다는 점 또한 문제다. 갈 곳도 없고 셋집을 구할 돈도 없는 사비타의 가족은 맨땅에 방수포를 두른 임시 거처에서 살고 있다. 그의 딸들은 떠돌이 동물과 쓰레기더미 옆에서 공부하는 처지가 됐다. 시 차원에서 그의 가족을 돕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사비타는 전했다.
한 활동가는 “정부가 미화라는 이름으로 취약한 이들을 제거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가 필요하다면 정부는 주민들에게 이주할 곳을 미리 찾아 알려줘야 했다”고 지적했다. 맨더는 “이 도시는 가난한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살 수 없는 방식으로 계획됐다. 철거 작업은 극도로 잔인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 정부가 이러한 비판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코먼웰스(영연방) 게임을 개최할 당시에도 뉴델리의 빈민가가 철거되고 노숙인들은 강제 이주를 당했다.
집을 잃은 모하메드 샤밈은 G20을 앞두고 품었던 기대가 깨졌다고 했다. 그는 “정상회의에 오는 높은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높은 사람들은 우리의 무덤에나 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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