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손자 사망 '급발진 의심 사고' 유족 "국과수 감정 납득 못 해"

강원영동CBS 전영래 기자 2023. 9. 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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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지난 달 31일 법원에 보완 감정 신청서 제출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강릉소방서 제공

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사고로 12살 남아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유족 측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보완 감정을 신청했다.

6일 유족 등에 따르면 최근 국과수로부터 "차량 제동장치에서 제동 불능을 유발할만한 기계적 결함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차량 운전자가 제동 페달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유족 측은 국과수 감정 결과서를 토대로 여러 부분에서 보완 감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제조사를 상대로 약 7억 6천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기한 운전자 A씨(원고) 측은 지난 달 31일 소송을 심리 중인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에 보완 감정 신청서를 냈다.

국과수가 최근 법원에 제출한 감정 결과와 앞서 법원에서 선정한 전문감정기관이 내놓은 사고기록장치(EDR) 감정 결과 간 모순되는 부분이 있고, 이 결과만 가지고는 정확한 원인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원고 측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현재 보완 감정이 진행 중이다.

A씨의 아들은 "EDR 감정 결과와 국과수 감정 결과가 상반되는 것들도 있고, 국과수 감정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 다시 보완 감정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원고 측은 우선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하기 직전 분당 회전수(RPM)가 급격히 떨어진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에서 선정한 감정기관은 모닝과 추돌 직전부터 강제로 '킥 다운(자동변속 차량에서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기어를 변경하면서 급가속하는 것)'이 이뤄지면서 속도와 RPM 증가 현상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국과수는 모닝과 추돌 직전 중립(N)에 있던 변속레버가 주행(D)으로 변경되고, RPM도 6400에서 추돌 시 4천으로 급격히 떨어졌다고 분석하면서도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운전을 하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된 A(60대)씨가 지난 3월 20일 사고 후 첫 조사를 위해 경찰에 출석했다. 전영래 기자


원고 측은 또 EDR 자료상 '마지막 0초'(충격 지점)를 두고 두 기관의 견해가 엇갈린 부분에 대해 보완 감정을 요구하고 있다.

통상 국내 차량은 수십 초 동안 급발진 현상이 나타나 사고가 발생해도 EDR은 에어백이 전개된 때로부터 소급해서 '마지막 5초'만 저장하기 때문에 마지막 0초가 어느 시점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A씨 차량의 경우 30여초 동안 급가속하며 675m를 달렸는데 이 과정에서 앞에 정지해 있던 모닝 승용차를 시작으로 국도 중앙분리 화단, 콘크리트 전신주, 지하통로 구조물 등 총 네 차례 충돌이 있었다.

사고 차량의 EDR은 A씨가 사고 전 마지막 5초 동안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했지만 5초 동안 속도는 시속 110㎞에서 116㎞밖에 증가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 같은 정황들과 EDR 기록을 토대로 '4곳의 충격 지점 중 어떤 지점을 마지막 0초로 보느냐'가 급발진 원인을 규명할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점마다 마지막 5초 동안 이동한 거리가 달라지고, 그 거리를 시속 110㎞로 달렸을 때 이동 가능한 거리를 계산함으로써 EDR 기록의 신뢰성을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 감정기관은 마지막 0초가 이번 사고의 마지막 시점인 '지하통로 벽에 부딪혔을 때일 개연성이 높다'고 추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10㎞ 주행 중에 가속 페달을 최대로 해 5초 동안 밟았다면 적어도 시속 116㎞보다 높은 상태가 될 개연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국과수는 마지막 0초가 지하통로 벽에 부딪히기 전인 '국도 중앙분리 화단을 충격했을 때'라고 봤다.

급발진 의심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을 요청하는 1만 7500부 가량의 탄원서. 전영래 기자


이에 원고 측은 국과수의 분석대로라면 변속장치에 손상이 없다는 전제하에 시속 110㎞ 주행 중 5초간 풀 액셀로 국도 중앙분리 화단까지 달렸다면 속도는 시속 116㎞ 이상이었어야 한다고 보고 속도에 대한 보완 감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EDR 자료상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인 상태에서 충돌 4.5~5초 전 RPM이 5900에서 4초 전 4500으로 떨어지는 현상도 정상적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가속페달 변위량은 가속 정도를 퍼센트(%)로 변환해 나타내는 기록으로, 99%부터 '풀 액셀'로 평가된다.

법원 감정기관은 풀 액셀을 전제로 RPM이 5900에서 4500으로 떨어지는 현상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국과수 감정서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이 자동차 전체 주행 과정의 RPM과 기어 변동 상황 자료만 표로 나와 있다.

원고 측은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모닝 승용차를 추돌하기 전 속도와 가속페달 변위량이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보완 감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12월 6일 오후 4시쯤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A씨가 몰던 SUV 승용차가 도로 옆 지하통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해 함께 타고 있던 손자(12)가 숨지고, A씨가 다쳤다. 이 사고로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유족들은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시 결함 원인 입증책임 전환 제조물책임법 개정에 관한 청원'을 게시했다. 해당 청원은 국민들의 공감을 사면서 5일 만에 국회 소관위원회 및 관련 위원회 회부에 필요한 5만 명을 넘어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A씨의 아들은 "대한민국에서 급발진 사고는 가정파괴범이자 연쇄살인범이다. 부디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주시고 대한민국은 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사회라는 것을 국민 모두에게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이번 소송이 급발진 사고에서 승소한 첫 사례가 돼 다시는 제조사가 방관하고 묵과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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