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정 트리오’, 여전히 놀랍고···경화의 기습뽀뽀, 명훈도 깜짝 놀랐다
세계적 음악가 반열에 오른 한국 대표 ‘클래식 남매’가 함께 빚어낸 여운이 사라진 무대에 박수가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5),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70) 남매가 한 무대에 섰다. 2012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정경화가 협연한 이후 11년 만이었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정경화·정명훈과 첼리스트 지안 왕(55)의 ‘정 트리오 콘서트’가 열렸다. 첼리스트 정명화(79)까지 모인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정경화·정명훈의 협주도 언제 다시 만날지 장담하기 힘든 무대였다. 클래식 팬들이 몰려 객석은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먼저 정명훈과 지안 왕이 ‘드뷔시 첼로 소나타’로 1부의 문을 열었다. 약 12분의 짧은 연주였지만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면모를 확인하는 데 충분했다. 정명훈은 무심하지만 부드러운 터치로 시작해 강렬한 타건으로 마무리했는데 마치 ‘준비 운동을 끝냈다’는 인상을 줬다. 정명훈의 피아노는 이날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두 사람의 연주를 단단하게 받쳤다.
이어 정경화·정명훈 남매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연주했다. 정경화가 붉게 염색한 쇼트커트 헤어 모습으로 등장하자 객석이 환호와 박수로 뒤덮였다. 남매 모두 브람스를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로 꼽는다. 정경화의 활질은 1악장 중반부를 지나며 점점 힘이 실리고 생기가 살아났다. 남매는 악장 사이 쉬는 시간을 거의 갖지 않고 2·3악장을 힘차게 밀고 나갔다. 2악장에선 바이올린이, 3악장에선 피아노가 주도권을 쥐고 엎치락뒤치락하듯 약진했다. 4악장에선 남매가 놀라운 집중력으로 무대를 강하게 휘어잡으며 격렬한 열정을 폭죽처럼 터뜨렸다.
2부에선 세 연주자가 함께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했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절친했던 음악가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작품으로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특히 주제와 12개의 변주곡을 통해 루빈시테인의 추억들을 그리는 2악장이 유명하다.
세 연주자는 변주곡들을 연주하며 그들이 쌓아온 추억을 하나하나 되짚는 것처럼 보였다. 정경화는 친구 지안 왕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호흡을 세세하게 맞췄고, 가끔씩 완전히 몸을 돌려 동생 정명훈을 쳐다보기도 했다. 지안 왕은 정명훈과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앨범을 녹음했고 베토벤 3중 협주곡을 연주했다. 정경화와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수차례 협연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앙코르 연주로 준비한 ‘멘델스존 트리오 1번 2악장’ ‘하이든 피아노 트리오 43번 3악장’까지 끝나자 관객의 절반 이상이 일어나 힘껏 박수를 보냈다. 정경화는 관객을 향해 ‘손 하트’ ‘손 키스’를 보내며 기뻐했다. 정명훈에게 기습적으로 ‘뽀뽀’를 하고선 뺨을 손등으로 닦아주기도 했다.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거장이 누나의 뽀뽀에 무너진 표정으로 황망하게 웃는 모습은 귀한 장면이었다.
정 트리오는 1968년 정명화가 정명훈의 피아노 반주로 클래식 음반사 ‘컬럼비아아트’ 오디션에 참가하자 컬럼비아아트 측이 정경화까지 참여한 트리오를 제안해 결성됐다. 1980년대 말까지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펼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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