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년6개월만에 국경 넘은 이스타…태풍도 밀어낸 열정
대만 태풍에 긴장감 흘렀지만 무사히 비행…조중석 대표 "잘 버텼고 결국 이뤄냈다"
(서울·타이베이=뉴스1) 금준혁 기자 = "만약에라도 활주로가 안보여서 못 내리면 제주도로 돌아오겠습니다."
이스타항공이 3년6개월만에 국제선을 다시 띄우기로 한 지난 2일 이스타항공 김포지점. 타이베이를 향해 이륙하기 1시간30분쯤 전인 오전 9시30분, 박지현 기장의 화상브리핑이 시작됐다.
문제는 태풍이었다. 11호 태풍 하이쿠이는 대만 남부지방을 지날 것으로 예상됐고 다른 항공사들도 오후부터 결항을 예고한 상황이었다.
박 기장에 이어 운항·캐빈승무원 합동브리핑이 이어졌다. ZE887편에는 박 기장을 비롯해 조운영 부기장, 한다혜·박세림 사무장, 우창원·김상철 승무원이 탑승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국제선 첫 비행입니다. 오늘 저희가 처음 취항하는 걸 아는지 태풍도 반겨준다고 대만 옆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큰 영향을 미치는 태풍이 아니니 잘 준비해서 출발하겠습니다." 박 기장이 농담을 섞어가며 침착하게 브리핑을 마무리했다.
김포~타이베이 노선은 2020년 2월 25일을 마지막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운항이 중단됐다.
오전 10시45분부터 35번 탑승구에서 승객들의 탑승이 시작됐다. 3년만에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띄웠던 지난 3월26일처럼 사연 있는 승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시 구조조정으로 이스타항공을 떠난 직원들이 사비를 내고 탑승하며 화제가 됐다.
대신 자리를 채운 것은 새로운 이스타항공을 알아가는 승객들이었다. 이스타항공은 운항 재개에 앞서 편도기준 4만9900원의 항공권을 선보였는데 그 덕분인지 189석 중 184석이 찼다.
이스타항공이 운항 재개를 기념해 유심카드와 현지 교통카드를 준비했다고 알리자 길게 줄을 선 승객들 사이에서 '오'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동창 여행을 나선 8명의 중년 승객들은 운항 재개 플래카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어린 딸을 동반한 가족은 "이스타가 3년 만에 뜨는 거래" 라며 이야기를 나눴다.
들뜬 승객들과 달리 승무원들은 긴장을 놓지 못했다. 오전 11시 15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출발 서류 지연으로 20분에도 움직이지 못했다. 비행기 앞쪽 탑승구를 담당하던 우 승무원은 비행기를 두번 왔다갔다하며 탑승 인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11시 28분이 돼서야 "캐빈크루 스탠바이"라는 기내 방송과 함께 비행기 문이 닫혔다. 15분 후인 11시 43분, 힘찬 엔진소리와 함께 이스타항공 국제선이 다시 날개를 폈다.
순항고도에 오른 12시39분쯤 기내 방송이 나왔다. 운항 재개를 기념해 기내 이벤트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좌석 팔걸이, 하단, 머리받침대 등 좌석에 종이 쪽지 15개를 숨기고 찾은 승객에게 기념품을 제공하는 '보물찾기'가 열렸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기념사진도 찍어줬다.
브리핑 전부터 자칫 태풍에 난기류가 잦아지면 기내 이벤트를 하지 못할까 걱정했던 승무원들의 표정도 한껏 밝아졌다.
오후 1시51분 '쿠궁' 소리와 함께 ZE887편이 타이베이 송산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재정난으로 국제선이 2020년 3월24일부터 완전히 중단된 후 1257일만이다.
우려와 달리 날씨는 비교적 맑았다. 예상보다 태풍이 늦게 상륙하며 북부에 있는 타이베이는 아직 영향권에 들어오지 않았다. 송산공항 측 소방차가 비행기를 향해 물대포를 쏘며 3년만에 돌아온 이스타항공 항공기에 환영인사를 건넸다.
20대 여성 승객 둘은 비행기에서 내리며 서로를 마주보며 "재밌었다"고 웃었다. 정비 업무를 위해 탑승한 이스타항공 직원도 "국내선 첫 취항도 감격스러웠는데 국내선보다 기분이 좋다"고 했다.
지난 3월에 이어 승객과 만나 일일이 기념품을 나눠준 조중석 대표는 "우리 직원들은 실패를 통해 과거보다 치열하게, 고객과 약속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잘 버텨주고 잘 견뎌줬고 결국엔 이뤄낸 거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rma1921k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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